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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정려(旌閭)
   
2. 효자 정대익 대유 형제지려
  위천면 장기리 490번지 장터에 있다.  정려는 목조와가로 건축 면적이 6.93㎡(2坪)이며 1동 2칸인데 서쪽 칸이 형제지려와 충노 오좌미 지려이다.
  정려 안에 현판을 하여 라 음각하고 하단에 충노 오좌미 지려라고 작은 글씨로 음각하였다.  정려 안에 기문은 없고 동계문집에 하인 오좌미와 함께 당시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정대익 대유 형제전 역문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에 있던 사람들은 백사림의 배신으로 성이 함락되어 거의 다 죽었으니 이날이 8월 18일 이었다.
  안음 사람 정대익 대유 형제는 그 어머니를 부축하여 그 하인 오좌미에게 업게 하고 형제는 앞뒤에서 호위하며 산성의 동북 기슭을 넘어 낭떠러지를 따라 시내를 건너 열 걸음 가면 아홉 번은 쓰러졌다.
  장수동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밝아오고 적의 선봉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깊고 은밀한 곳을 찾을 겨를도 없이 어머니를 숨기고 형제가 각기 그 곁에 엎드려 있었다.  적이 먼저 그 어머니를 발견하고 칼로 등을 치니 형제가 동시에 소리 지르며 달려 나가 몸으로 그 어머니를 덮어 가리자 형제는 한칼에 모두 죽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온전하여 마침내 집에서 천수를 다하였으니 이를 일러 어버이가 죽자 이름마저 묻힌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당시 효도로 죽은 사람이 선비 류강과 하인 은호 등인데 다 고을에서 의논하여 이미 정려를 내렸으나 이 두 분만은 유독 정려를 얻지 못했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당시 대익은 청야의 임무를 맡았고 태수 곽준과는 아주 가까운 친척이었다.  그래서 위기를 당하여 생사를 같이 하기로 굳게 약속했다.
  이때 전황은 급박하여 경계가 삼엄한데 세 고을의 백성들이 노인과 어린이를 이끌고 성 아래까지 왔다가 조만간 또 적이 들이 닥친다는 거창현감 한 형의 말에 한꺼번에 구름처럼 흩어지고 물결처럼 빠져나가 각자 스스로 피난할 방도를 생각하였으나 대익의 가족은 대익이 성안에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처럼 성을 떠나지 않았다.
  곽준은 더욱 죽음으로 성을 지킬 결심을 굳히고 대익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어찌 모셔오지 않았소? 모시고 올 사람이 없습니다.
  곽준이 곧 군인과 들것을 보내어 성에 모셔오니 이때 세 고을 사족의 가족으로서 성안에 들어온 사람은 겨우 서너 집 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다 성 밖에 있었다.  이 때문에 여론이 시끄러웠으나 사람들은 대익이 여든 살 노모를 모시고 반드시 모두 죽게 될 성안으로 들어온 것을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나란히 함께 그 죽을 곳으로 들어온 것은 바로 해 달과 밝음을 다룰만한 훌륭한 일인데 사람들이 그것을 칭찬할 줄 모르니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이성이 비록 작으나 또한 나라의 일이다.  백성이 나라 일을 따르는 것은 마땅한 도리나 그가 맡은 일은 또한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  이미 어진 군수와 일을 같이 하면서 군수가 정성으로 묻는데 어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록 교묘하게 피할 궁리를 하고 싶어도 곽준이 이제 비장한 각오로 성을 사수할 뜻으로 충의를 떨치는데 만약 잘못 대답하면 어찌 군법대로 처분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이는 대익이 사태를 헤아리는 지혜로 그 판단을 자세히 한 것인데도 이 일을 거론하는 사람들은 그 간의 정세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한결같이 그것을 잘못이라고 하니 그 또한 심히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대익이 그 아들은 편한 곳으로 피난을 보내고 유독 그 어머니만 입성시켰다는 말까지 하지만 어찌 자기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 못하겠는가?  이는 곧 사람의 정리에도 더욱 먼 것이다.  그 당시 곽준이 그 어머니만 여기 두고 아들은 어디로 보냈소 하고 묻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린 아이가 있건 없건 일찍이 개의치 않은 것은 곧 흩어 보내어 생명을 보전케 하려는 생각 또한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에 어찌 사랑에 가볍고 무거움이 있어서 그렇겠는가?
  성이 함락되기 며칠 전 대익이 성 밖의 자기 집에 갔을 때 왜적이 이미 이웃 고을의 경계까지 침범했다는 말을 듣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걸어서 월성으로 해서 인적이 없는 길을 골라 사오십리를 걸어서 성에 도착하니 전투는 이미 시작되어 돌과 화살도 무릅쓰고 성으로 들어갔다.
  성이 함락되던 날 밤 모자와 형제가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 잃어버리고 오직 살아날 생각만으로 거의 부모 형제를 돌보지 않은 사람이 많았으나 대익 형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축하고 호위하여 자기 몸으로 대신 죽고 자기 어머니를 적의 칼날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니 이것을 보더라도 대익은 죽음으로 효도할 마음을 스스로 분명히 한지 오래였다.  일찍이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같이 할 수 있겠는가?
  가령 논란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과연 대익이 당초 잘못된 행동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평하는 방법의 중요성은 그 마지막에 있는 것이다.  최후의 행동이 이처럼 높고 높으니 종전의 구설수는 스스로 물이 바다로 들어가고 여름에 얼음 녹듯이 없어져야 마땅하다.  그렇게 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작은 일을 따지면서 덮어두기 어려운 큰 절조를 덮어두려고 하니 한퇴지가 이른바,
  남의 아름다움을 도와서 이루어 주기를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하였으니 개탄스러울 뿐이다.
  대익은 자가 엄견이고 대유는 자가 언휴로 초계 정씨이다.  비록 학문을 닦지는 않았으나 형은 지혜롭게 일을 잘 처리하였고 아우는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였다.  평소 매와 개를 길러 몸소 고기잡고 사냥하여 좋은 음식을 대접해 드렸다.
  죽을 당시 형의 나이51세 아우의 나이 40세였다.  어머니 류씨는 효열 부라 이해 두 아들이 효도로 죽었고 이듬해 딸과 외손녀가 열렬하게 죽었으며 하인 오좌미가 난리에 도망치지 않고 힘을 다해 업고 보호하다 두 주인과 함께 죽었으니 충성으로 죽었다.
  효행 열행 충성의 삼강이 어찌 한 가문에 갖추었는가?  아아 아름답구나.
  내가 적치를 세우려고 한지 오래되었으나 많은 사람들의 논란이 있는 가운데 나 혼자 나서서 논쟁하기도 어렵고 머뭇거리며 감히 말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이 정해지기를 기다리며 날로 그 일을 생각하니 죄를 짓고 위태로운 목숨이 아침저녁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에서 정려의 일을 추진하지도 못하고 끝내 효자의 이름을 빠뜨리게 된다면 나 또한 함께 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강을 기록하여 첫 공론 얻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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