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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세시풍속
 
제1절 정월

1. 설날
  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로 조상에게 제사드리고 한해동안의 액을 다스리고 복을 기원하는 날이다.
  그래서 이날은 한 해의 길흉을 좌우한다 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새로운 마음과 몸가짐으로 벽사초복을 기대했다.
  원래 음력을 지켜오던 우리가 음력을 폐지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때였다.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개국 505년 1월 1일(양력)이라고 칙명으로 발표했다.  그리하여 일제 때 신정과세를 강압적으로 추진했으나 민족 정서가 뿌리 깊은 우리민족은 신정과세를 받아 들이지 않고 신정을 일본설이라하여 오히려 우리의 전통 설날을 더욱 지켰다.  해방이 된 뒤 신정과세는 주춤했다가 5․16군사정권이 들어서 새마을 사업이 진행되면서 공무원들에게 신정과세를 강권함으로써 전통 설보다는 신정과세가 높은 추세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족정사로 수천 년동안 내려오던 전통 설보다는 전통을 하루 아침에 권력의 힘으로 없앨수는 없었다.  마침내 1985년 전통 설을「민속의 날」로 지정하고 공휴일로 지정했다가 1989년(설날)로 원래대로 이름을 복원하고 3일간의 연휴기간을 설정했다.  결국 일제가 강압적으로 없애려고 하고, 군사정권이 소생시켰다.  강압과 행정력으로 수천년 이래의 민속을 없애겠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일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이제 되찾은 우리의 전통의 뿌리를 우리는 소중히 가꿔 그 맥을 앞으로 억만년대의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가. 설치레
  설치레란 설날 아침에 입는 새 옷을 이르는 말로서 세장이라고도 한다.
  설날 이른 아침 설치레를 입고 차례를 지내는데, 아이들이 입는 색동저고리는 까치저고리라고도 한다.  옛날 우리들의 어머님들은 자식들에게 깨끗한 설치레를 입히기 위하여 밤을 세우며 옷감을 짜고 바느질을 하고 다듬이질을 해서 우리들에 설치레를 마련해 주셨는데 이렇게 설치레에는 어머님의 정성과 사람이 깃들어 있다.
  여자들이 입는 한복은 반드시 속치마, 속바지 등을 갖추어 입고 치마는 왼쪽의 허리끈을 오른쪽 어깨끈 밑으로 넣어 치마의 겉자락을 왼손으로 붙들 수 있도록 입는다.  전통적으로 미혼인 경우 빨간 치마, 또는 꽃분홍 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입고 깃과 고름은 자주색을 달았고, 기혼여성은 남색 치마에 옥색 저고리나 또는 자주색 치마에 유록색 저고리를 입고 자주깃과 남색 끝동을 달았다.  남자 한복은 바지, 저고리, 조끼, 마고자, 두루마기까지 갖추어야 정장이 된다.  대체적으로 분홍색, 겨자색, 옥색 등 연한 색깔을 선호하며 바지 저고리를 한가지 색으로 했다.
  신발은 남자 어른은 가죽신이나 미투리, 여자는 꽃신이나 꽃미투리를 신었지만 상민들은 곱게 삼은 짚신을 신었다.

나. 명절제사
  설날 아침에 온 가족이 모두 설치레로 갈아입고 제사를 지내는데, 지역과 문중에 따라 각각 다르다.  설날, 정월보름, 한식, 단오, 칠석, 추석, 중양, 동지 등에 지낸다.  대체적으로 이들 중 설날과 추석때 가장 많이 지내며 현재는 이것이 보편화 되어 있다.
  제사는 주자의 가례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 제사를 받드는 조상은 제주의 4대조까지 지내며 장손의 집에서 모신다.  제수와 세주를 마련하여 안방에세 모시는데 사당이나 대청 마루가 있는 집은 사당이나 대청마루에서 모신다.  제수는 떡국, 술, 과일, 적, 건어물이 필수적이며, 소주와 복숭아 개고기는 쓰지 않는다.  사당이 없는 경우 신주 대신 지방을 쓰는데, 근래는 영정을 모셔 놓기도 한다.
  설날의 차례는 떡국을 으뜸으로 친다.  그리고 흰떡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고대의태양숭배신앙에 연유된 것이다.  설날은 새해의 새날이므로 밝음의 표시로 흰색의 떡을 사용하고, 떡국의 떡이 둥근모양을 한 것도 태양의 둥근 모양을 본뜬것이라고 한다.  또한 설날은 새로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사상에서 깨끗한 흰떡과 흰 떡국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다. 세배
  세배는 새해 첫 아침에 드리는 첫 인사다.  차례가 끝난 뒤 집안에서 항렬순위에 따라서 차례로 절을 하고, 다음으로 일가친척 중 항렬이 높고 나이가 많은 어른을 찾아 절을 한다.  또한 마을에서 나이많은 어른들을 찾아뵙고 절을 한다.  세배를 할 때 나이는 어리나 항렬이 높은 사람이 나이는 많으나 항렬이 낮은 사람에게 세배를 하면 항렬이 낮은 노인은 반드시 답례를 해야 한다.  세배를 다니는 시간은 보통 오전9시에서 오후3시 이전이 적당하다.  그러나 현재는 일일이 집집을 찾아 다니지 않고 경로당에 마을 어른들이 모두 모여서 집단 세배를 받고 있는 곳이 많다.

라. 덕담
  덕담이란 새해를 맞이하여 일가 친척 또는 친구간에 복을 빌어주고 소원을 이루게해 주기 위한 죽의의 뜻이 있다.  대체적으로 덕담은 행운, 생자, 득관, 치부 등과관련된 것이 많다.  덕담은 언령신앙에서 유래된 것인데, 말이나 음성에도 신비한 힘이 있어서 말 그 자체가 영력에 의하여 실현된다고 믿었으므로 덕담이 유래된 것이다.

마. 성묘
  성묘란 조상의 산소를 보살피는 것으로 새해 인사를 겸하는 것이다.  성묘를 할때 간단한 제수 즉 술, 안주, 과일 등을 가지고 가서 산소 앞에 진설해 놓고 절을 한다.  자손들이 산소에 가면 먼저 묘역을 살펴 더러운 물건이나, 눈이 쌓여 있으면 치운 다음 절을 한다.
  성묘 길에는 자손들에게 조상들의 아름다운 행적과 인물됨에 대하여 들려주는데 성묘는 바로 조상들의 뿌리를 찾는데 그 의의가 있다.  성묘를 통하여 우리의 근원을 찾을 수 있고 우애를 돈독하게 한다.

바. 문안비
  왕조시대에는 여자가 십세가 넘으면 문밖 출입을 삼가게 했다.  그래서 설날이 되면 옷단장을 곱게 한 하녀를 인척이나 친척집에 보내어 새해의 문안 인사를 전했는데 이를 문안비라 했다.  그 문안비에게 세배상을 차려주어 잘 대접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이 문안비는 없어진지 오래이다.

사. 복조리
  섣달 그믐 자정이 넘어서 또는 설날 이른 아침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두는데, 이것은 그 해의 행운을 쌀알과 같이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신앙에서 생겨난 민속이다.  아침 일찍 복조리를 사면 복이 많이 들어온다고 믿었기에 남보다 빨리 한 해 동안 사용할 조리를 모두 사서 안방의 문지방 위에 붉은 실로 매달아 둔다.  그 이유는 문을 여닫을 때마다 복이 조리에 가득히 쌓이라는 뜻에서이다.

아. 삼재 액막이
  그 해에 삼재의 나이에 해당하는 사람을 매 셋을 그려 문설주에 붙여 삼재액을 막는 방패로 썼다.  삼재는 사유축생은 해자축의 해, 신자진생은 인묘진의해, 해묘미생은 사오미의해, 인오술생을 신유술의 해에 삼재가 든다고 한다.  그러므로 생년 9년을 간격으로 하여 삼재가 든다.

자. 머리카락 사르기
  지난 한 해 동안 머리를 빗을 적에 빠진 머리카락을 상자에 모아 두었다가 설날 저녁에 문밖에서 태워버리는 풍습니다.  머리카락을 태울때 나는 냄새를 맡고 잡귀들이 모두 물러간다는 신앙에서 나왔다.

차. 야광귀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야광이라는 귀신이 있어 섣달 그믐밤이나 정월 대보름날 밤에 집에 들어와서 사람들의 신을 신어 보고 맞으면 신고 간다고 했다.  이때 신발을 잃은 사람을 불길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이것을 두려워하여 신을 감추고 등불을 끄고 잔다고 한다.  그리고 체를 대청 벽이나 섬돌 또는 뜰사이에 달아 매어두는데, 이것은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다가 다 세지 못하고 닭이 울면 도망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지방에서는 야광귀가 신을 신고가지 못하도록 아이들이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세우는데, 이때 졸거나 잠을 자는 아이의 눈썹에 어른들이 하얀 떡가루를 칠하는데 이것이 연유되어 “섣달그믐날 밤에 자면 눈썹이 센다”는 말이 생겨났다.

카. 설 그림
  새해를 송축하고 악귀를 쫓기 위하여 대문에다 동물의 그림을 그려 붙이는 풍습이 있다.  동물 중에서도 닭이나 호랑이 그리고 해태 모양을 한 사자는 악귀를 물리치는 힘이 강하다고 생각하여 주로 닭, 호랑이, 사자의 그림을 문이나 벽에 그려 붙여 액을 막았다.

2. 안택
  정초에 벽사진경을 목적으로 각 가정에서 한해동안 집안에 아무 탈이 없게 해 달라고 조상신, 터줏대감, 마을 신에게 올리는 제이다.  안택은 무당을 불러서 큰 굿을 하는 경우와 스님을 불러서 독경을 읽는 경우, 그리고 주부가 제주가 되어 거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유한 계층에서는 무당이나 독경무 또는 스님을 불러서 큰 굿을 했으나 저소득계층에서는 집안에다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주부가 제주가 되어 가족들끼리 제를 지낸다.
  안택은 정초와 추수를 끝낸 뒤에 하는데 우리 지방은 정초에 주로 실시했다.
  안택을 할 때는 좋은 날을 잡아서 금줄을 치고 집 앞에 황토를 깔아서 잡귀, 잡신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제를 올리는 장소는 집안에서 가장 청결하고 부정을 타지 않는 대청마루나 장독간을 주로 택한다.  특히 장독대는 신성이 깃들어 있는 장소 이기에 옛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이곳에 제단을 만들고 이른 새벽 일찍 일어나 맑은 물에 머리를 감아 빗고는 정화수를 떠올려 놓고 가족들의 건강과 출세와 안전을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늘과 산에게 빌었던 것이다.  지금도 시골의 부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장독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 부귀와 출세를 비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택을 집 밖에서 하는 경우도 있는데, 냇가인 경우 모래를 쌓아 올려서 단을 만들고 그 위에 흰종이를 펴고, 산중일 경우에는 깨끗한 돌이나 바위위에 흰종이를 깔고 제물을 차려 지낸다.  제물은 시루떡, 술, 돼지머리, 과일, 건어물 등을 사용했는데, 중을 불러 염불안택을 할때는 시루떡은 하지 않았다.
  근래에 와서는 집안의 재앙이나 질병 또는 사고가 있을 때 수시로 안택굿을 하는데, 특히 집을 새로 마련하거나 새 차를 구입했을 때 무당을 불러서 집안이나, 삼거리에서 안택굿을 올리기도 한다.

3. 길흉점과 금기
  정초가 되면 자기 자신이나 가족들의 한 해 운수를 알아보는 점복을 한다.  가장 흔한 것이 토정비결이고, 그 외 윷점이나 화투점, 그리고 오행점을 쳐서 한 해의 길흉을 미리 알아보거나 점술가나 복술가 또는 무당을 찾아서 한 해의 운수를 점친다.  또 보름에는 액막이의 방편으로 날리던 연줄을 끊어버리거나 아침 일찍이 부유한 집의 부엌흙을 한주먹 훔쳐다가 자기집 부엌에 깔거나, 동이 트기전 공동우물에 가서 남보다 먼저 정화수 한 그릇을 길어 오기도 한다.
  부자집 흙을 훔쳐와서 자기집 부엌에 깔면 부자가 된다는 신앙에서 행해진 이 풍속을 복토 훔치기라 하며, 정화수를 일찍 길어오는 것도 남보다 먼저 복을 타기 위함이다.
  설날 새벽 골목에 나가 짐승이나 새 소리를 듣고 한 해의 운수를 알아보기도 했는데, 까치소리를 들으면 행운이 오고, 잡새소리를 들으면 불운이 따른다고 믿었다.
  대보름날 달빛을 보고 그해의 흉풍을 점치기도 하는데, 달빛이 붉은 색이면 가물어 흉년이 들고, 달빛이 희면 냇물이 넘칠 징조라 풍년이 들고, 달빛이 중황색을 띠면 대풍이 든다고 믿었다.  입춘날 보리 뿌리로서 흉풍을 점쳤는데 보리 뿌리가 세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가닥이면 평년작은 되나 한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점복에는 반드시 가리는 일 즉 금기가 뒤따르는데,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거울을 깨면 일년 내내 우환이 떠나지 않으며, 초하룻날 울면 일년 내도록 울고, 화롯불을 엎지르면 한해동안 재수가 없으며, 정월 보름날 아침 여자가 그릇을 깨뜨리면 일년 내도록 언짢은 일이 생기므로 이런 일은 금기시 되었다.

4. 상자일과 쥐불놀이
  상이란 가장 최초라는 말이다.  상자일은 정월 최초의 쥐날을 말한다.
  농사가 주업이던 시대에 쥐들이 곡식에 주는 피해는 막심했다.  그래서 농민들은 쥐를 없애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했다.  상자일에 콩을 볶으면 「쥐의 주둥이를 볶아라」라고 반복을 하면 쥐들이 없어진다고 믿었으며, 밭두렁이나 논두렁에 불을 놓아 해충도 없애고 들쥐들도 없앴다.
  근래에는 보름날 밤에 횃불놀이를 겸해서 쥐불놀이를 하고 있다.  즉 보름날 달맞이를 하기 위하여 달불을 놓는데 처음에는 달집을 짓고 달집을 태워 달맞이를 하다가 논둑, 밭둑에 불을 놓는다.  쥐불놀이는 쥐를 없앤다는 목적외에 논밭의 잡귀를 몰아내어 신성하고 깨끗한 땅을 만들겠다는 신앙심도 함께 깃들여 있다.
  상자일 밤 자시에 방아를 찧으면 쥐가 없어진다고 믿어 여인들이 밤중에 방아를 찧기도 했으며, 또 상자일에는 일을 하지 않고 놀았는데, 이는 밤에 불을 밝혀 바느질이나 길쌈을 하면 쥐들이 곡식을 축내므로 이날은 불을 밝히지 않고 놀았다.
  이지방에서는 상자일에 곡식을 볶아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재수가 좋다고 하여 콩같은 것을 볶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먹는 풍속이 있었다.

5. 상축일
  상축일은 소날, 또는 소달깃날이라고도 한다.  농경사회에 있어서 소는 아주 중용한 역할을 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소를 소중히 여겼다.  그러므로 이날은 소에 일을 시키지 않고 쇠죽에 영양가 있는 먹이를 많이 넣어 잘 먹여야 일년 동안 농사를 잘지어 준다고 믿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가 좋아하는 콩, 콩나물, 고사리, 싸라기 등을 삶아서 소에게 주는 농가도 있다.
  소날에는 도마질을 하지 않는다.  쇠고기를 요리할 때 도마위에 올려놓고 썰어야 하는데 소의 날에는 이같은 일을 삼간다는 뜻으로 도마질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날은 쇠붙이로 된 기구를 다루지 않는다.  이날 쇠붙이로 만든 기구를 만지면 쟁기의 모습이 망가지고 방아를 찧으면 소가 기침을 하기 때문에 이것 역시 삼갔다.  또한 이날은 곡식을 집 밖으로 퍼내면 소에게 질명이나 좋지 못한 일이 생긴다 하여 곡식을 퍼내지 않는다.

6. 상해일
  상해일은 정월달에 제일 처음 드는 돼지날이다.  이날에는 콩가루로 얼굴을 씻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은 얼굴이 검은 사람이 콩가루로 얼굴을 씻으면 얼굴이 희게 된다고 믿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7. 상사일
  첫 뱀날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머리를 빗거나 감지 않는다.  이날 머리를 빗거나 감으면 뱀이 집안으로 들어와 재앙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8. 인날
  음력 정월 초이레날은 인날이다.  즉 사람날이라는 뜻이다.  만물의 영장인 우리인간을 새해를 맞이하여 새해를 새롭게 기리는 날로 이날에는 설날이후 들떳던 마음을 정돈하고 새로운 한해의 설계 즉 일년지계의 날이기도 한다.  아침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외출을 삼가며 집에서 독서와 붓글씨로 조용히 하루를 보낸다.

9. 곡식날
  인날 다음날인 초여드레날은 곡식날로 우리가 살아 가는데 가장 소중한 곡식을 새해들어 다시한번 음미하며 한해의 농사설계도 해보는 날이다.  이때쯤되면 설날 장만했던 음식도 모두 바닥이나 매우 얌얌하다.  각농가에서는 씨앗이나 하려고 고히 간직했던 콩이나 밀을 조심스럽게 조금만 꺼내어서 해삼 볶자 콩볶자 하며 알맞게 볶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둘러 앉아 고소한 곡식의 진미를 맛보기도 한다.

10. 귀신날
  정월 초아흐레날은 귀신의 날로 재앙을 가지고 다니는 악귀들이 설치는 날이라 생각하며 그동안 즐겁기만 했던 설날 분위기에서 벗어나 바짝 긴장을 하고 특히 농사 백성들은 일거리를 챙기기 시작한다.

11. 정월 대보름
  정월15일은 대보름날 또는 상원일이라 한다.  이날 아침에는 오곡으로 밥을 지어 먹고 이른 새벽에 호도, 은행, 잣, 밤과 같은 단단한 과일을 깨물며 “부럼 깨문다”라고 하여 일년 동안 몸에 부스럼이나 종기 등과 같은 피부병이 드는 액을 막는 풍습이 있다.  또한 차고 맑은 청주를 마시는데 이를 귀밝이술이라 하며 이를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믿었다.  또한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여 봄철이나 여름철에 말려두었던 명아주(도토라지), 박나물, 가지나물, 호박나물, 버섯등을 삶아서 먹는다.
  몸이 야윈 사람은 두부를 먹으면 살이 찐다고 했으며 키가 작은 사람은 콩나물을 먹으면 키가 큰다고 했다.
  보름날 아침에 김, 아주까리잎 또는 모란잎으로 쌈을 싸서 먹으면 풍년이 들어 나락섬이 집 안으로 많이 들어 온다고 했는데 이것을 복쌈이라고 했다.
  정월14일 저녁에 찰밥․수수밥․서숙(조)밥을 해 두었다가 대보름날 미명에 쳉이(키)에다가 여러 가지 나물과 맨밥을 이것들과 함께 담아서 소에게 먹이는데, 이때 소가 밥부터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들고 나물부터 먹으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찰밥을 해 가지고 감나무에 가서 “요누무 감나무 베 넘길란다.  요누무 감나무 베 널길란다”고 외치면서 감나무를 짜구로 몇 번 쪼아서 그 위에다 찰밥을 엉켜 붙이면 그해에 감이 많이 열린다고 한다.
  보름날에는 개에게 밥을 주지 않는데, 이날 개에게 밥을 주면 개파리가 많이 끊는다고 했다.
  더위 팔기 풍습은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나 있는 풍습이다.  이른 아침 누가 자기를 부르면 절대 대답을 해서는 안된다.  만약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하면 상대의 더위를 자기가 사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름날에 이불을 타서 마당에 짚불을 놓고는 그 이불의 네 모서리에 있는 먼지를 모아 태워서 하늘로 올려 보내면 그해의 액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때 아카시아 나무나 대나무를 시루의 밑에 넣어 놓고 시루떡을 해서 하늘에 빈다.
  보름날 새벽 일찍 긴 장대를 처마밑에다 새워 놓으면 그해에 삼이 잘 자란다고 했다.
  보름날 아침 조상에게 소지를 올리고 난 다음, 마당에다 짚불을 놓고 온 가족이 “얼싸 모기야, 얼싸 모기야”하며 짚불 위를 타고 넘는데, 이것은 모기를 없애기 위한 풍습이다.
  또한 새끼를 가지고 와서 짚불 위에 태워서, 탄 새끼를 집 밖으로 버리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은 집 안으로 뱀이 들어오지 말라는 액막이다.
  대보름날 민속 중 으뜸인 것은 달맞이와 달집 태우기다.
  달이 뜨기 전 마을 사람들은 동산으로 올라가 저마다 돋아오르는 달을 먼저 보려고 한다.  달이 떠오르면 개인의 소원성취를 빌고 풍년을 기원한다.
  달집 태우기는 달이 떠오르는 방향에 달문을 만들고 짚과 청솔가지를 엮어 달집을 만들어 소원을 적은 종이와 청솔가지와 짚으로 엮은 달을 달집에 넣어 불을 붙인뒤 달집의 주위를 돌며 한 해의 평안을 빈다.  이때 묵은 저고리의 동전이나 깃을 뜯어서 달집어 던져 넣기도 하는데 이것은 지난 해의 묵은 부정을 깨끗이 씻어 낸다는 의미와 함께 몸에 걸쳤던 옷을 받침으로써 자기 육신의 일부를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도 있다.  달집의 둘레를 풍물패가 돌면서 농악을 울리기도 하며 아이들은 불 위를 자신의 나이만큼 뛰어넘기도 한다.
  대보름날 밤에 다리를 밟는데 자기 나이 수만큼 밟으면 수명이 길어진다고 믿는데서 유래된 것이다.
  연에다 자신의 액을 실어 날려보내는 풍습이 있다.  연에다가 생년월일시를 적고 ‘누구의 액을 없애주소’라고 써서 연을 띄우다가 저녁 무렵에 연줄을 끊어 연을 멀리 날려 보냄으로써 한 해의 액운을 머리 보내게 된다.

12. 산제
  매년 정월대보름이 되면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를 올리는데 이 행사를 산제 또는 당산제라고 한다.
  정월 열나흘날 밤에 제관이 제를 모실 산이나 나이먹은 신목에 가서 제물을 차려놓고 있다가 자정이 넘어서면 즉 대보름날이 되면 제를 올린다.
  제관은 마을회의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을 뽑아 정하는데, 제관으로 지정될 사람은 한 달 동안 근신하여 몸을 삼가고 부정된 것을 보지 않는다.  밤중 조용한 산골의 찬물에 몸을 씻어 항상 몸을 깨끗이 하였다.  제를 지내기 5일 전부터는 제관은 뒷간에도 가지 않는데 그래서 음식도 극히 소량의 죽을 먹는다고 한다.
  열나흘날 제관은 제물을 사러 장에 가는데, 가급적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아침 일찍이 다녀온다.  물건을 살 때 흥정을 하지 않으며 장사가 부르는 값대로 다 주어야 한다.  이것은 흥정도 다툼의 일종이니, 제관이 다투면 부정을 타기 때문에 흥정을 삼간다.  부정된 것은 궂은 일로부터, 임산부, 전염병 환자 등을 보는 것을 말한다.
  정월달이 들면 마을 어귀로부터 골목골목에 황토흙을 양쪽으로 듬성듬성 놓고 마을 입구와 집안에 금기줄을 쳐서 부정된 것의 침입을 막는데 금기줄에 흰문종이를 끼워놓은 것은 하늘로부터 범접하는 잡귀 잡신을 막는 것이고, 황토흙은 땅으로부터 범접하는 잡귀 잡신을 막는 것이다.  이때 외부인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은 절대안되며, 만약 금기줄을 치기전에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어왔다면 제가 끝날 때까지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정성을 드리는 것은 제관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정성을 드려야한다.  마을의 공동 우물도 깨끗이 치고 금기줄을 친다.
  제가 올리는 식과 장소는 마을마다 다른데 우리고장 당산 마을 제단 위치는 마을에서 한마장 떨어진 뒷산 솔숲 위쪽이고 제관선임은 정월 초열흘날 동회석상에서 하는데 정결하고 산제당일인 15일 일진에 생기복득이 맞는 사람 2명으로 한다.  선정된 제관은 목욕재계하고 12일 시장에서 제수를 구입한후 13일부터는 두문불출하며 제단에 금기줄을 치고 양쪽에 붉은 흙으로 7점씩 금토한다.  이날부터 제관은 죽만 먹어야 하고 한밤중에 제단 밑에 있는 목탕에서 목욕을 한후 정성을 드린다.  그리고 입제일인 14일에는 전동민이 청소하고 심신을 단정히 하며 주육과 놀이를 삼간다.  그리고 이날 야반에 제관은 제수를 제단에 운반 진설하였다가 15일 자정이 되면 독축과 함께 정성스레 제사를 모신다.  제사가 끝나면 제물을 조금씩 봉하여 사대문로인 조산에 매토하고 날이 밝으면 전동민이 모여 음복하였다.  수백년을 전해오던 당산 마을의 산제행사가 5․16이후 전설처럼 살아지고 축문만이 남아 전해온다.

13. 지신밟기
  산제를 지내고 날이 밝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음복을 한 후 대동회를 연다.  그리고는 마을의 농악대가 집집을 돌면서 풍물을 울려 지신을 밟아주는데 이것은 재앙을 막고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서 한다.
  제일 처음 부엌에서 조왕신을 위한 지신을 밟은 후, 성주신이 있는 대청마루 그리고 장독, 뒷간, 곳간, 우물, 소막, 돼지막, 뒤안 등을 밟는다.  이때 주인은 음식을 풍부히 내놓고 풍물패와 마을 사람들을 접대한다.
  풍물패가 지신을 밟은 보수로 곡식이나 돈을 주는데, 이렇게 모은 곡식과 돈은 마을 기금으로 충당된다.  지신밟기는 집안의 안녕과 재앙을 물리치는 벽사의 성격도 있지만 마을사람들의 공동체 의식과 협동심을 고취시키는데도 그 목적이 있었다.  60년대 없어졌던 지신밟기는 80년 후반에 각 마을 단위로 소생되어 소규모이기는 하나 발전적으로 성행되고 있다.

14. 디딜방아 훔치기
  옛날에는 의술이 발달하지 않아 마을의 한 집에서 전염병이 발병되면 그것이 오 마을로 확산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많은 인명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한 액막이 풍습도 다양했다.
  디딜방아 훔치기는 전염병 특히 마마를 예방하기 위한 액막이 방편으로 이 지방에 두루 성행했다.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이웃 마을의 어느 집에 있는 디딜방아를 밤중에 가서 몰래 훔쳐오는데, 사전에 디딜방아를 훔쳐오기 위하여 마을의 아낙네들은 여러차례 계획을 세워 연습을 한다.  지정된 날짜가 되면 방아를 훔칠 집으로 가는데, 이때 방아를 무사히 훔쳐나오면 다행이나 만약에 주인에게 들키면 방아를 훔치지 못한다.  자기집의 방아를 도둑맞는 것을 주인이 알게 되면 방아를 못 훔쳐 가게끔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을 한다.  그러면 훔치러 갔던 사람들은 그 집에서 물러나와야 한다.  그런데 방아를 훔쳐 일단 그 집 밖으로 방아가 나오면 집 주인이 알았다 해도 주인은 방아를 돌려달라고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일단 집밖으로 나온 디딜방아를 다시 집 안으로 들이면 오히려 방아 주인 집에 부정이 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인은 디딜방아를 도둑맞은 것을 알면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며 그 디딜방아를 보내야 하는데 이것은 부정된 것을 집에서 물려낸다는 의식에서 기인된 것이다.
  일단 집 밖으로 옮겨진 디딜방아는 상여 모양으로 만든 목도 위에 올려서 여인들이 양옆에서 울러메고 ‘상여메기’ 소리를 하며 마을로 옮긴다.  이때 뒤따르는 사람들은 상주처럼 ‘어이 어이’하면서 방아상여를 따라간다.  마을로 옮겨진 상여는 다음날 아침 마을의 당산나무 위에 세워 놓는데, 이때 왼쪽으로 꼰 새끼에다 붉고 푸른 천을 엮어 당산나무 주위에 둘러쳐 놓는다.  방아는 머리쪽을 아래로 내려가게 하고, 다리를 위로 올라가게 세워 놓으며 거기에 여인의 꼬장중의를 씌워 둔다.
  또는 여인의 속바지나 삼베수건, 그리고 속적삼 등을 걸어두기도 한다.
  방아는 반드시 동쪽으로 향하게 세워 둔다.  제물에는 반드시 백시루떡을 사용했는데, 백시루를 찔 때 아카시아 나무를 열십자로 하여 시루위에 얹어 찐다.  그리고 시루채 방아 앞에 놓는데, 시루떡 한 가운데는 칼을 꽂아 둔다.
  제관은 마을 장로가 한ㄴ 것이 상례인데, 이때 제관은 ‘앞도 당상 뒤도 당산, 영명하신 당산님네 우리가 이래 비는 것은 당산손님으로 이래 비는 것이 아니고 올해한해 날아들고 묻어들고 질금질금 따라든 잡귀 잡신을 우리 마을에서 모두 실어가지고 나가게 해 주옵소서.  제명에 간 귀신, 동달귀신, 처녀귀신, 오다가다 죽은 귀신 모두 다 모아서 우리 마을에서 확 씰어가지고 가옵소서’ 하면서 절을 한다.  그리고 나면 마을 사람들이 한 사람씩 나와서 모두 자기 집안의 재액을 물리쳐 달라는 소원을 빌게 된다.  제가 끝나면 음복을 하고 음식을 나눠 먹는데 떡을 떼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리고 농악을 울려 풍물을 치면서 하루를 흥겹게 보낸다.  풍물을 치는 것은 신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이다.

15. 입춘
  입춘은 대개 음력 청초를 전후한 양력2월4일에 해당되는데 이날을 시작으로 하여 첫 계절인 봄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이날은 집집마다 대문 기둥이나 대들보, 천정 등에 좋은 뜻이 담긴 글귀를 써붙이는데 이를 춘축이라고 한다.  대체적으로
  입춘대길
  건양다경
  국태민안 가합인족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
  부모천연수 자손만대영
  문영춘하추동복 호납동서남북재 등의 글귀를 써서 붙인다.  이날 아침에는 햇나물을 무쳐서 먹었으며, 또한 오곡을 솥에 넣어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 나온 곡식이 그 해에 풍작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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