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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비판(碑版)
   
8. 죽헌 조선생 사적비
  황산리 258번지인 마을 뒤 정안동에 있다.  통정대부행회양부사 죽헌조숙의 사적을 기록한 비로 거유 연재 송병선이 글을 지었고 면암 최익현이 글씨와 아울러 저서 하였으며 서기1899년11월에 유림과 후손들이 세웠고 1986년에 보수하였다.



역문

죽헌 조선생 사적비명 병서

죽헌 조선생이 안의 정안동에 장재한지 삼백년이 지났으나 이제껏 비를 세우지 못해 후손 익진이 그 아들 석은을 시켜 행장을 보내 나에게 글을 청함이 간절하기에 사양하지 못하고 그 행장을 펴보니 공의 휘는 숙이요 자는 선경이요 창녕인이라 신라 태사 계룡이 시조이고 여러대를 지나 휘 겸은 고려태조의 따님 덕공공주를 짝하여 벼슬이 대락승이다. 그 후로 9대 평장사가 있었고 이조에 와서 대대로 이름난 사람과 들난 벼슬이 많으니 휘 문택은 좌리공신 대총재로서 시는 충익이요 삼대째 휘 중인은 판서로서 처음으로 안의에 살았으니 공의 증조부가 된다. 조부의 휘는 정인데 집의벼슬을 증직 받았고 아버지의 휘는 승로인데 글을 잘하여 천으로 훈도가 되었다. 어머니는 강양이씨 계보의 따님으로 홍치 갑자년(1504년)에 공을 낳으니 어려서부터 기질이 남다르고 얼굴이 준수하며 거동이 무게 있고 재주가 뛰어나 말을 배우면서 문자를 두루 알아 소학을 배우면서 부모를 섬김과 어른을 공경함에 배운 대로 행하니 때 따라 살펴 겨울은 따뜻이 하고 여름이면 서늘케 함이 한 번도 어김이 없고 유순한 얼굴로 뜻을 받들고 음식을 봉양함이 갖추었더라.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니 그 얼굴을 알지 못하여 애통함이 지극하였고 아버지 병중에는 옷과 띠를 벗지 아니하고 지성으로 몸을 대신하기를 하늘에 빌었다. 상주가 되어서는 시묘 살이에 법도를 지켜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 탈상 뒤에 하서 김선생에게 배워 경전의 요지를 강론하고 질문하여 칭찬을 많이 받았으며 선생께서는 소학을 수신의 근본으로 삼아 더욱 힘써 공부하였다. 가정 신묘년(1531년)에 사마양시에 합격하고 경자년(1540년)에 문과에 올라 승문원 정자가 되어 저작박사 홍문관 정자봉상시 직장겸 춘추기주관에 돌더니 임인년(1542년)에 승직되어 성균관 전직이 되었다. 사간원 정언과 장악원 첨정으로 옮겼다. 계묘년(1543년)에 퇴계선생이 사락정에 오셔서 공과 더불어 강론하여 크게 칭찬하더니 천거하여 예조좌랑과 성균관 사예를 제수하였고 기유년(1549년)에 임금의명을 받아 호남의 시사관으로 있다가 돌아와 홍문관 수찬이 되고 부교리에 승직되어 조금 뒤에 사헌부지평 사간원헌납에 이임되었다가 사간원에서 직언을 하매 권력있는 간신의 미움을 받아 광양현감으로 나갔다가 계축년(1553년)에 들어와 호조정랑과 사복시 첨정이 되었다가 응교로서 흥양으로 나갔다가 다시 광양으로 바뀌고 낙안과 풍기로 이임하면서 인륜을 밝히고 풍속을 올바르게 하여 도리에 어긋나는 명예를 구하는 일을 하지 아니 하였으니 백성들이 모두 비를 세워 칭송하였다. 경치 좋고 아름다운 곳이면 직무의 여가를 타서 노닐면서 속세를 떠난 듯 기뻐하였다. 선조께서 위에 오르매 특히 이조좌랑과 홍문관 전환을 제수하시기로 공이 정암 조선생의 신원과 증직의 은전을 글을 올려 청하였다. 임금께서 경회루에서 문신들을 불러 시험할제 공이 서서 글을 지어 바치니 임금이 아름다히 칭찬하시고 술을 내리시며 또 정랑을 배수하셨고 얼마 뒤에 통정대부 회양부사에 제수되었다. 공은 항상 벼슬에서 물러갈 뜻을 품은지라 홀연히 돌아와 서재를 정안동에 짓고 이름을 낙성재라 하고 날마다 학도들과 더불어 경서와 사기와 의리 강론을 종신토록 일삼았다. 만력임오(1582년)삼월 이십일에 낙안에서 별세하시니 수가 칠십 구세이다. 판서공 묘 뒤 계좌에 반장하였으니 슬프다 공과 같은 재주와 기량으로 성스러운 임금을 만나서 당세에 빛나지 못하고 조그마한 벼슬에서 맴돌면서 쌓이고 쌓인 경륜과 도량으로 겨우 백리 다스림에 베풀고 말았으니 어찌 명이 아닌가 하노라. 고을에서 받은 봉급을 가난한 일가와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매양 나라 제삿날이면 고기를 삼가고 임천에 물러와 쉬어도 궁궐을 사모하는 정성이 조금도 해이함이 없었으니 공과 같은 분은 옛 사람이 말하기를 시종 임금을 잊지 아니하였다 함이련가 하노라. 고을 사람들이 공의 행의를 사모하여 학림서원에서 향사한다. 배위는 전주이씨니 부사 지의 따님이요 계배도 또한 전주이씨이나 생산을 못하였고 공의 묘 뒤에 모두 부장하였다. 아들이 세분이니 개우는 통정이요 원우는 첨지중추부사요 계우는 통덕랑이다. 큰집의 아들 경연은 현감이요 사위 정제는 진사요 둘째집 아들은 경윤 경홍 경찬이요 끝에 집 아들은 경응이요 사위는 강선명과 이찰이다. 경연의 아들 곤수는 군수요 경홍의 두 아들에 창이요 현은 도사다. 증손과 현손이하는 호남과 영남에 흩어져 사니 모두 수백 인이 된다. 저술한 시문과 경연일기를 모두 임진난에 잃어버렸으니 애석하도다. 가만히 생각건대 우리 동국의 선비들이 이 사예를 다라 오는 자는 구태여 사람들이 묻지 않으니 공은 이미 담응의 문정에서 배웠고 또 노소재와 정임당 이청연 정호음 및 임갈천 신요수 정역양의 어진이와 더불어 벗하고 또 그 자손들의 성함이 비길데 없으니 공의 어짐을 가히 증거하여 속일수 없다. 명하여 가로되 진실하구나 이런 사람은 세상 빛낸 보배로다. 사학이 넉넉하니 조정에 드러났다. 지업을 겪었던들 어디에 쓰인들 부족하랴. 거문고 노래속에 교화를 베푸시니 큰 칼이 적게 쓰이네 마침내 평복 입고 수풀속에 늙었도다. 연꽃옷 난초띠로 노래에 온전하니 불식한 보답으로 나의 후손 넉넉하다 그수가 열백이라 가지가지 무성쿠나 정안의 이 언덕은 산높고 물 맑으니 아름다운 그 덕 새겨 묘앞에 세우노라.

고종 삼십 육년(1899년) 기해 구지하한에 가의대부 사헌부 대사헌겸 성균관 제주 시강원찬선 경연관 서연관 은진 송병선 글을 짓고 자헌대부 공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월성 최익현 쓰고 아울러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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