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 수승대 바로보기 위천면북 수승대사진
인기검색어 : 상천 거창 강위용 cjrtndka 경주 강천리 공파 
   장기
   창촌
   사마
   거차
   남산
   금곡
   상천
   강남
   서원
   강동
   마항
   면동
   황산1구
   황산2구
   당산
   모전
   석동
   원당
   무월
   고장 팔경
   거창 수승대 명승지
   금계와 강당소
   기백산(箕白山)
   금원산(金猿山)
   문바위
   진동암(鎭洞岩)
   학담
   한수리(漢水里)와 영귀대(詠歸臺)
   유안청(儒案廳)계곡
   유안청 폭포
   용폭과 조담
   솔찌이(松亭)
   지재미(지잠리:芝岑里)와 가섭
   두문골(杜門洞)과 동편양지
   납바위(猿岩)
   지장암(地藏岩)
   지재미 마을
   무제 바위(祈雨岩)
   마애삼존불
   가섭암 터
   부도골
   선녀담
   가섭
   거무시(현성산)
   상혈암
   달암바위
   베리바위
   상혈암자
   동암지와 동암폭포
   호음산
   호음산의 산세
   위수의 형승들
   문암담과 돌문
   명박바위
   자고암과 약어담
   안정좌 나무
   구연폭의 구연
   섬솔과 풍우대 욕기암과 영귀정
   밤소와 복구암
   수승대 수영장
   척수대
   송정숲
   불고대
   예기대
   동정대
   오선대
   달암 이선생 순절동
   영계 유선생 입안동
   경판관 장수동
   지석정
   요수 신선생 장수동
   별암
   구암정
   죽헌 조선생 장수동
   수교동
   모선대
   모양대
   거연대
   일오대
   고목과 거수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
   강남사지 석불
   반구헌
   황산 신씨 고가
   구연서원 관수루
   요수정
   거창초계정씨종가소장고문서
   정온선생문집책판
   당산 노송과 송원단
   정온선생 종택
   정온선생 제복일습
   호음산성(虎音山城)
   용문고성(龍門古城)
   장풍고성(長風古城)
   가섭암지 삼층석탑
   가섭암지(迦葉庵址)
   지장암지(地藏唵址)
   상혈암지(上穴庵址)
   동암사지(東菴寺址)
   각금사지(覺今寺址)
   수염사지(水染寺址)
   염라사지(閻羅寺址)
   망월암지(望月庵址)
   오장군 석장(吳將軍石杖)
   반전암(潘?岩)
   위치
   면적
   지형
   기후
   생물
   개황
   시대에 따른 명칭변화
   연혁도표
   선사시대
   신계(申溪)와 구정이(九井里)
   우리 조국 임례
   남내
   백제사신과 수송대
   신라 말의 여선현(餘善縣)
   고려 초기의 감음현(感陰縣)
   감음현의 부곡화(部曲化)
   이정공 서문씨의 시조기
   여말 효자 반전
   고려 말의 충신
   조선의 개국
   안음현과 치소변경
   연산사화와 권시민
   현인들의 학풍진작
   퇴계명명 수승대
   임진왜란
   정유재란
   광해와 인조조
   병자호란
   선생의 글과 유품
   선생연보 개요
   숙종조의 명의 유의태
   서언
   황고 신수이선생 문집
   안의현 최처사 토적복읍실기
   우리고장의 교육
   기미독립만세사건
   유기그릇 공출
   간솔가지 공출
   조국광복
   꽃동네의 전말
   한수리골 꽃동네 경과 일지
   꽃동네 신문게재
   행정개요
   도로교통
   농   업
   각급학교
   각급기관
   유   교
   불   교
   기독교
   천주교
   성씨와 문중
   진양강(姜)씨 박사공파
   청주경(慶)씨
   청주곽(郭)씨
   안동권(權)씨 삼괴당공파
   안동권(權)씨 추밀공파
   강릉김(金)씨 옥가파
   경주김(金)씨 백촌공파
   경주김(金)씨 상촌공파
   경주김(金)씨 상촌공파
   광산김(金)씨 문숙공파
   광산김(金)씨 문민공파
   광산김(金)씨 전서공파
   김녕김(金)씨 충의공파
   김녕김(金)씨 충의공파
   김해김(金)씨 판도판서공파
   김해김(金)씨 판도판서공파
   선산김(金)씨 취수공파
   안동김(金)씨 익원공파
   의성김(金)씨
   밀양박(朴)씨 규정공파
   밀양박(朴)씨 난계공파
   밀양박(朴)씨 지족당파
   반남박(朴)씨 군수공파
   거제반(潘)씨
   수원백(白)씨
   안음서문(西門)씨
   창녕성(成)씨 랑장공파
   은진송(宋)씨 호군공파
   거창신(?)씨 참판공파
   순흥안(安)씨 직장공파
   순흥안(安)씨 찬성공파
   남원양(梁)씨
   함양오(吳)씨 덕은공파
   함양오(吳)씨 석암공파
   해주오(吳)씨 전서공파
   단양우(禹)씨 문강공파
   거창유(劉)씨
   거창유(劉)씨 아림군 파종 좌랑공파
   파평윤(尹)씨 부윤공파
   파평윤(尹)씨 판도공파
   강양이(李)씨 교리공파
   경주이(李)씨 교감공파
   경주이(李)씨 국당공파
   경주이(李)씨 청와공파
   경주이(李)씨 청호공파
   광주이(李)씨
   덕수이(李)씨 집의공파
   성주이(李)씨 문열공파
   연안이(李)씨 정양공파
   장수이(李)씨 생원공파
   전주이(李)씨 정효공파
   충주이(李)씨
   합천이(李)씨 목사공파
   합천이(李)씨 참지공파
   나주임(林)씨 집의공파
   인동장(張)씨 황상공파
   담양전(田)씨 경은공파
   담양전(田)씨 하곡공파
   정선전(全)씨 채미헌공파
   경주정(鄭)씨 문헌공파
   경주정(鄭)씨 제안공파
   초계정(鄭)씨 상시공파
   하동정(鄭)씨 문헌공파
   창녕조(曺)씨 충익공파
   풍양조(趙)씨 회양공파
   한양조(趙)씨
   함안조(趙)씨 덕곡공파
   여양진(陣)씨 백곡공파
   영양천(千)씨 매헌공파
   경주최(崔)씨 광정공파
   흥해최(崔)씨 참판공파
   연주현(玄)씨 도첨의공파
   청도김(金)씨 참판공파
   함양오(吳)씨 성재공파
   연안이(李)씨 부사공파
   김해김(金)씨 김녕군파
   남평문(文)씨 순평군 오곡파
   거창유(劉)씨 아림군 파종 통정공파
   파평윤(尹)씨 사직공 증손 사과공 휘 언웅파
   진양하(河)씨 문효공파
   광산김(金)씨 전서공파
   경주김(金)씨 수은공파
   경주최(崔)씨 광정공파
   남평문(文)씨 추봉공파
   경주최(崔)씨 광정공파
   경주최(崔)씨 관가정공파
   은진송(宋)씨 충순위공파
   이예(李芮)
   이원달(李元達)
   유환(劉?)
   정옥견(鄭玉堅)
   신우맹(?友孟)
   권시민(權時敏)
   신권(?權)
   조숙(曺淑)
   조학(趙謔)
   정유명(鄭惟明)
   성팽년(成彭年)
   강위용(姜渭龍)
   신복행(?復行)
   신복진(?復振)
   조효박(趙孝博)
   정온(鄭蘊)
   권건(權?)
   곽인(郭?)
   신수의(?守彛)
   이예(李芮)
   이인달(李仁達)
   이원달(李元達)
   이충달(李忠達)
   유환(劉?)
   이평(李枰)
   정회아(鄭懷雅)
   정이아(鄭以雅)
   정옥형(鄭玉衡)
   경임(慶?)
   조숙(曺淑)
   유덕개(劉德盖)
   오적(吳勣)
   정온(鄭蘊)
   정인경(鄭仁慶)
   신인명(?認?)
   신성진(?性眞)
   신필복(?必復)
   신석구(?錫九)
   신병우(?炳佑)
   정기상(鄭璣相)
   정연시(鄭然時)
   신종익(?宗翼)
   정제안(鄭齊安)
   정회아(鄭懷雅)
   경사창(慶嗣昌)
   권시민(權時敏)
   정옥형(鄭玉衡)
   조숙(曺淑)
   김희년(金禧年)
   김덕년(金德年)
   정유정(鄭惟精)
   강위용(姜渭龍)
   유덕개(劉德盖)
   정유명(鄭惟明)
   성팽년(成彭年)
   오덕홍(吳德泓)
   성효규(成孝奎)
   정온(鄭蘊)
   오전(吳佺)
   유경갑(劉敬甲)
   반영(潘榮)
   신경직(?景稷)
   조이덕(趙彛德)
   정중원(鄭重元)
   정 박(鄭 璞)
   강문거(姜文擧)
   신필각(?必珏)
   신성도(?性道)
   정기상(鄭璣相)
   정현상(鄭玹相)
   정규상(鄭珪相)
   신병곤(?炳坤)
   정연갑(鄭然甲)
   신종익(?宗翼)
   정연석(鄭然奭)
   신종훈(?宗薰)
   성윤동(成允仝)
   정종아(鄭從雅)
   경신(慶紳)
   유계남(劉械男) 유홍남(劉弘男) 유회(劉會)
   유기남(劉起男)
   유임(劉任)
   유치순(劉致順)
   곽후징(郭厚徵)
   유유창(劉有昌)
   유문창(劉文昌)
   경선홍(慶善弘)
   조효열(趙孝悅)
   유호(劉浩)
   유계남(劉繼男)
   최태휘(崔泰輝)
   강만(姜晩)
   정두식(鄭斗植)
   유영수(劉永壽)
   음사란?
   정사인(鄭師仁)
   유담(劉覃)
   유항(劉恒)
   조영손(趙永孫)
   유관(劉瓘)
   유우민(劉友閔)
   정옥견(鄭玉堅)
   정형(鄭泂)
   신복형(?復亨)
   신복기(?復起)
   오덕홍(吳德泓)
   신당(??)
   정임(鄭?)
   정백(鄭?)
   이여옥(李汝沃)
   강함(姜緘)
   정창시(鄭昌詩)
   정창훈(鄭昌訓)
   정창근(鄭昌謹)
   곽희익(郭希益)
   정기수(鄭岐壽)
   정기윤(鄭岐胤)
   조곤수(曺崑壽)
   조익휘(曺益輝)
   정식(鄭軾)
   정기필(鄭夔弼)
   유우삼(劉友參)
   정창모(鄭昌謨)
   정광윤(鄭光胤)
   정한(鄭澣)
   조상덕(趙尙德)
   조광덕(趙光德)
   조석경(趙錫卿)
   유숙(劉琡)
   신경휘(?景暉)
   경대임(慶大臨)
   경대진(慶大振)
   조한웅(曺漢雄)
   김시좌(金是佐)
   유한명(劉漢明)
   정기성(鄭岐成)
   이전상(李典常)
   이백(李陌)
   이거민(李居敏)
   이순정(李順禎)
   이시형(李時馨)
   이규한(李圭漢)
   경운흥(慶雲興)
   수직이란?
   권덕명(權德明)
   신모(?模)
   신석명(?錫命)
   경흔(慶?)
   
강문옥(姜文玉)
   최영륜(崔永崙)
   경찬(慶燦)
   정추문(鄭樞文)
   증직이란?
   조양정(趙陽挺)
   조선갑(趙先甲)
   강신(姜?)
   조염(趙琰)
   강문구(姜文?)
   강문태(姜文泰)
   신수침(?守?)
   신원명(?元?)
   신성묵(?性?)
   신필기(?必驥)
   신동건(?東建)
   학행이란?
   성진규(成震奎)
   권여눌(權汝訥)
   신제(?梯)
   강수구(姜壽龜)
   신복명(?復?)
   신성목(?性穆)
   신재익(?在翼)
   신봉구(?鳳九)
   조태영(趙泰永)
   신병채(?炳采)
   강방회(姜芳會)
   신종식(?宗軾)
   신병찬(?炳瓚)
   조종현(趙鍾炫)
   권협(權浹)
   강수격(姜壽格)
   신재신(?在新)
   신병용(?炳龍)
   신병철(?炳哲)
   조현(趙玹)
   강진형(姜震馨)
   조의교(趙義敎)
   신영윤(?寧胤)
   신병장(?炳章)
   조종술(趙鍾述)
   신종삼(?宗三)
   조중구(趙仲九)
   신필식(?必式)
   신종순(?宗舜)
   경헌중(慶憲重)
   신두성(?斗晟)
   조종호(趙鍾浩)
   조종헌(趙鍾憲)
   유한풍(劉漢豊)
   정중리(鄭重履)
   유병용(劉炳龍)
   정철균(정철균)
   정팔희(정팔희)
   정환필(정환필)
   정안우(정안우)
   이원달(李元達)
   유환(劉?)
   오희남(吳希男)
   조효열(趙孝悅)
   유명개(劉名盖)
   정온(鄭蘊)
   신병우(?炳佑)
   유희탁(劉熺倬)
   정대필(鄭大弼)
   정영필(鄭永弼)
   오좌미(吾佐美)
   은작(銀勺)
   물금(勿金)
   반전(潘?)
   정유명(鄭惟明)
   조효열(趙孝悅)
   정대익(鄭大益) 정대유(鄭大有)
   곽인(郭?)
   유유도(劉有道)
   신수이(?守彛)
   정기헌(鄭岐憲)
   경재래(慶再來)
   강수후(姜壽?)
   신수침(?守?)
   신성진(?性眞)
   신성열(?性烈)
   신동건(?東建)
   조종(趙琮)
   조덕순(趙德淳)
   신익구(?翼九)
   이택영(李宅榮)
   신병륜(?炳崙)
   신병민(?炳民)
   조병욱(趙炳昱)
   오환묵(吳煥默)
   유우계(劉遇啓)
   열녀 안동권씨
   열녀 진양강씨
   기우단
   합천이씨 강천재 제단
   합천이씨 삼세 묘제단
   창녕조씨정안동제단
   구연서원(龜淵書院)
   학림서원(鶴林書院)
   금계서원(金溪書院)
   덕천서원(德川書院)
   화천서원(花川書院)
   역천향사(?川鄕祠)
   정충사(靖忠祠)
   재사루(在斯樓)
   고산정(孤山亭)
   구암정(龜巖亭)
   능허정(凌虛亭)
   안분정(安分亭)
   약암정(藥巖亭)
   연하정(烟霞亭)
   영귀정(詠歸亭)
   영사정(永思亭)
   읍취정(?翠亭)
   요수정(樂水亭)
   학송정(鶴松亭)
   석정(石亭)
   정유명의 정려
   효자 정대익 대유 형제지려
   신동건 정려
   신성렬 진양강씨지려
   신성진 지려
   신재주의 처 안동권씨 지려
   이택영 지려
   모학재
   사마재
   불이재
   학송재
   화수재
   정송재
   추모재
   위원재
   화천재
   덕천재
   서산정사
   봉선재
   영모재
   사고재
   추원재
   강천재
   모원재
   첨영재
   역천서당
   모원재
   삼승재
   오효재
   추모재
   괴음재
   구연정사
   남정정사
   동안재
   야천정사
   정안재
   지동재
   청송당
   추원재
   취한당
   함양재
   황강재
   감모재
   경심재
   박약재
   영모재
   원천재
   추원재
   노산재
   경목재
   망양재
   모악재
   첨모재
   충의재
   무월재
   고려참지정사 이공 신도비
   문질공 강천 이선생 신도비
   영계 유선생 신도비
   유명조선국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역양정선생 신도비
   판서조중인 신도비
   동계 정선생 신도비
   구연서원 삼선생 사적비
   죽헌 조선생 사적비
   요수 신선생 산고수장비
   고려 참지정사 이공 유적비
   行中直大夫司圃暑別...
   석곡 성선생 유적비
   야천 신선생 유적비
   경처사 유적비
   황고 신선생 유적비
   의사 남재 유공 희탁 유적비
   육선생 학림서원 유허비
   박약재 강선생 유허비
   약암 신선생 유허비
   청송 신선생 기적비
   숭정대부 지중추부사 권공 기적비
   유악처사 안동권공 협 유지비
   노천선생 안동 권공 건 배유인 청주경씨 부지 묘도비
   삼일독립운동 기념비
   은사 정해균 선생 추모비
   通政大夫折衝將軍龍?衛副...
   첨지경공묘갈명
   愛國志士草溪鄭公大弼之墓碑
   愛國志士草溪鄭公永弼之墓表
   역천 서당
   장풍
   학담
   고현
   조담
   학송정
   척수암
   수승대
   구연서원
   읍취정
   동계선생가묘
   가섭
   서산정사
   문집
   왕비골과 공예왕비
   금원산과 납바위
   베루바위
   동계의 신혼시절
   명의 유이태
   정희량 이야기
   서언
   노동요
   유희요
   정한요
   잡가
   정월
   이월
   삼월
   사월
   오월
   유월
   칠월
   팔월
   구월
   시월
   십일월
   십이월
   여훈서
   본면 출신 국무위원
   본면출신 국회의원
   본면출신 경상남도 의회의원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
   대통령 선거인단
   거창군 의회의원
   박사학위 취득자
   사법고시 합격자
   행정고시합격자
   교수 및 각급학교장
   공무원(사무관급이상)
   군인 및 경찰공무원
   훈장 및 표창자
   면사주요일지(1)
   면사주요일지(2)
   면사주요일지(3)
   면사주요일지(4)
   교량현황
   발문
제1장 설화
   
4. 동계의 신혼시절

  정유명 진사의 아들 동계는 글공부는 잘 했으나 17살 때 마마를 앓아 얼굴이 얼금얼금 얽었고 미남도 아니었으며 가세도 넉넉하지 못하였다.
  그가 살던 역골(옛날 문주동이었고 지금의 강동의 동북일부)에서 남쪽으로 십리 남짓한 영승에는 충의위 윤할이라는 큰 부자가 있었으며 택호를 윤만석이라 하고, 혼기가 된 예쁜 딸이 있어 그 배필을 구하느라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차에, 고현(지금 위천 일대)의 서당에 많은 수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만석은 곧 사람을 보내어 그 서당의훈장과 학도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다.
  예쁜 딸을 가진 부잣집의 초청을 받은 학도들은 각기 의복을 단정히 하고 언동을 각별히 조심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주객간의 인사가 끝날 무렵에 빨간 앵두와 호박색 꿀이 푸짐하게 놓인 상이 나왔다.  모처럼 귀한 음식을 만난 학도들은 한꺼번에 한입씩 집어넣고 싶었으나 주인어른이 점잖게 앉아 있는지라 조심스럽게 앵두를 한알 한알 꿀에 찍어 먹었다.  그런데 정동계는 접시에다 꿀과 앵두를 듬뿍 놓아 버무려서 한입씩 먹는 것이었다.  이렇게 실속 있게 음식 먹는 것을 본 윤만석은 그의 의젓한 언동과 평소 정진사의 덕망을 아울러 생각한 끝에 동계를 사윗감으로 마음먹고 안으로 들어가 부인의 의견을 물었으나 부인의 생각은 딴판이었다.  문틈으로 학도들의 거동을 살펴봤던 부인은 동계의 음식을 먹는 태도가 무작스럽고, 곰보라는 것과 또한 가난한 것을 들어 반대하였다.  그러나 윤만석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19살 난 동계를 사위로 삼았다.
  혼례를 치른 신랑은 화촉이 밝혀진 신방에서 아름다운 윤규수와 초면상을 받았다.  사랑방에서는 새 사돈끼리 향연을 즐기면서 담소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신랑은 진수성찬 상을 앞에 놓고도 젓가락조차 들지 않았다.  신부는 잔을 권하며 음식을 먹지 않는 까닭을 물었다.  이윽고 망설이던 신랑은 난생 처음 보는 진귀한 음식을 대하니 어머니 생각이 나서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신부는 종이를 펴놓고 봉개를 싸게 하였다.  그래도 무엇인가 미흡해 하는 신랑을 바라보던 신부가 조심스럽게 물어 본즉 그 봉개를 어머니께 드리고 와야 마음 편하겠다고 했다.  이 효성에 감동한 신부는 책속에 봉개를 감추어서 대문 밖까지 전송하여 주었다.  동계는 십리 길을 단숨에 뛰어가서 어머니 앞에 엎드리니 신방을 비워 두고 온 그를 꾸짖어 곧 돌려보내려고 하였으나 기어이 봉개를 펴 자시는 것을 보고서야 돌아가 신방을 치렀다고 한다.
  동계는 신혼시절에 장모로부터 푸대접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선을 볼 때부터 장모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고, 여러 사위들 중에서 오직 그만이 가난했던 것이다.  장모가 사위들을 대접할 때 늘 동계에게는 정성을 쓰지 않았다.
  윤만석 집에는 큰 대추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많은 대추를 거두어 사위들을 대접했는데, 작은 것만 골라 동계에게 주었고, 또 한번은 처가 대문채를 새로 짓는데 동계가 뒷날 일산대 자루가 긴 양산으로 감사나 수령들이 부임할 때 의장으로 받히던 것과 드나들 수 있게 높이 지으라고 말하다가 장모와 여러 동서들에게 핀잔을 들은 일이 있었다.  뒷날 동계가 경상감사가 되어 과연 일산을 받히고 오니 장인은 즉시 대문을 헐어 동계를 맞았고 집안에 들어선 동계는 즉시 그 대추나무를 베게 하였으며, 그 뒤로부터 영승에는 대추가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경남 거창군 위천면 원학길 324(장기리 511-2)대표전화 : 055-940-7560팩스번호 : 055-940-7559
오늘 : 96 어제 : 116
전체 : 322,592
Copyright ⓒ 2010위천면북.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