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편 정려와 재실 > 제2장 재실(齋室)

역문
강천재기
안음은 예부터 산수 좋은 고을로 유명했는데 강천 한 구비는 더욱 좋은 곳이다. 재는 옛날 강천선생 문질공이 퇴로하여 숨은 곳으로서 년대의 거리가 오백년이나 되니 옛날 재는 알 수가 없다. 선생이 복거하신 시한편이 세상에 전해오고 있으니
『인끈 풀고 돌아온 백발 늙은이가 재를 새로 마련하니 임당도 조용구나 산은 영경을 열어 청고하게 솟았고 물도 참된 근원인가 활발히 흐른다. 반세동안 뜬 이름 도리어 부끄럽고 한인의 생활 다시 더 구함 없다네. 조용히 물리를 관찰하자 즐길 만하니 오월과 양풍은 서늘한 가을 같구나』하였으니 그윽이 음미해 보면 쇄락한 고풍을 칠팔이나 알만하도다. 또 그의 세상을 살펴보면 선생은 고려 말 사람이라 시운이 장차 끝나매 기미를 보고 물러갔으니 이른바 급유에서 용퇴하여 신선과 가깝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좋은 산수가 좋은 주인을 만났으니 인과 지가 서로 맞았다. 강천의 산기슭은 금원에서 내려왔고 금원의 아래에는 조담이 있다. 강천의 물이 조담에서 발원하고 조담의 뒤에는 큰 바위가 있으니 세상에서 달암이라 하니 바로 선생의 중자인 참판공 휘 원달이 그 아내 김씨와 함께 순절한 곳이다. 이 때문에 이름이 되었고 인해서 공의호가 된 것이다. 세월이 오래되자 재가 빈터 되고 또 병화를 지나 양대의 묘소를 알 수 없으니 그 청풍고절을 상상하는 자들은 다만 산고수장을 볼뿐이었다. 그러나 시골 인사들의 첨모하는 마음이 오래도록 쇠하지 않아 금계원에 제향하였다. 그러다가 국중의 모든 원사가 훼철될 금계도 면하지 못하니 자손들이 사모할 곳이 없음을 개탄하고 서로 의논하여 옛 터에다가 재를 세웠으니 재가 모두 4칸이라 중앙이 당이 되고 좌와 우로 두 방을 만들었으니 좌는 공필당이라 하고 우는 화수헌이라 하여 합해서 이름하기를 강천지재라 하였다. 또 재 뒤에 세일제 올리는 단을 만들고 1903년 10월 어느 날에 단에 제사하고 당에서 음복하며 낙성하였다. 장차 제사할 때 시골 인사들이 모두 모여 참배했으니 유풍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후손 정식 형기 중기가 문부로의 명을 가지고 재규에게 부탁해서 기문을 짓게 하였다.
재규가 이르기를 중기가 만약 당이나 단을 갖추고 세일제를 올리는 것으로서 추모를 다했다고 여기면 안 된다고 생각하네. 오직 오월양풍을 상상하면서 더러운 마음을 씻고 조담과 달암을 쳐다보고 행의를 닦아서 이 재로 하여금 길이 산수에 빛이 있게 하면 거의 가깝다고 할 것이네. 재규는 사양하지 못하여 이렇게 써서 그 자손들
에게 고하고 겸하여 안음 선비들에게도 들려주는 바이다. 선생의 휘는 예이고 성은 이씨니 합천인이다. 갑진정월에 팔계 정재규가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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