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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연혁
1. 개황
1. 개황 우리 고장 위천은 서력기원을 전후한 아득한 옛날에 임례국(稔禮國)으로 비롯되어 남내(南內), 여선(餘善), 이안현(利安縣) 등의 중심지역 이었다가 조선 초기에 이르러 치소(治所)의 변경과 함께 안음현(安陰縣)에 속하였고 서기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통합으로 거창군에 속하면서 고현(古縣), 북하(北下), 기복성쇠(起伏盛衰)의 의미를 깊게 되새기면서 그 옛날로 되돌아가 보고자 한다. 부족국가 시대의 이 지역은 위천천과 상천천 주변의 비옥토를 농경하던 부족이 신계촌(申溪村 : 창촌마을)을 중심으로 취락을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인근 지역인 마리면과 북상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안의면의 심진(尋眞) 화림(花林)의 양동까지 흡수하여 마침내 임례국을 이룩하였다. 세월은 흘러 임례를 남내(南內)라고 하다가 후에 여선(餘善)으로 고쳤는데 이는 의식주가 넉넉하여 “넘친다. 또는 “남는다. 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때의 부족국가 규모는 함양군지 연혁편 삼한시대조에 기록된 바와 같이 대개 지금의 군(郡)이나 면단위 정도의 지역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임례국의 동쪽은 자타(子他:훗날의 거창)였고 서쪽은 훗날의 속함(速含: 함양)으로 그 영역은 원학동(猿鶴洞)의 위천(渭川) 마리(馬利) 북상(北上)과 심진동(尋嗔洞)의 안의(安義) 그리고 화림동(花林洞)의 서상(西上) 서하(西下)였었다. 삼국초기에 임례가 남내로 바뀌고 마리의 중남부일대와 안의(安義) 서상(西上) 서하(西下)가 마리현(馬利縣)에 속하므로 임례국 옛터의 영역이 반 이상으로 줄어진 곡절도 있었다. 서기757년(경덕왕16년)에 신라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남내를 여선현으로 고쳤고 서기940년(고려태조23년)에 여선현(餘善縣)을 다시 감음현(感陰懸)으로 고쳐 불렀다. 서기1161년(고려의종15년) 본 현(감음현)사람 자화(子和)라는 자가 그때 마침 친정에 와 있던 정서 과정(鄭敍瓜亭)의 처이자 인종왕비(공예왕비)의 아우인 임씨와 감음현의 이속들이 임금과 대신들을 조롱한다고 무고한, 이른바 자화(子和)의 무고사건(誣告事件)으로 말미암아 감음현이 어처구니없게도 감음부곡(感陰部曲)으로 격하되어 장장 230년 동안 수모를 당하였다. 서기1390년(고려공양왕2년) 부곡이 복현된 감음 땅에 이안현(利安縣)을 합쳐서 다시 감음현으로 하고 옛 임례국의 영역을 모조리 되찾게 되었으며 고도 신계에 다시금 감무(監務)를 두게 되었다. 서기1408년(조선태종8년)에 감음현의 치소를 신계에서 옛 이안현의 치소였던 지금의 안의로 옮겼고 서기1417년(태종17년)에는 감음현을 안음현(安陰縣)으로 바꾸었다. 서기1728년(영조4년)에 무신의 난(희량난)이 일어나자 이듬해인 1729년에 안음현을 혁파하여 거창과 함양에 분속시켰으니 원학동인 마리 위천 북상은 거창으로 속하게 되었다. 서기1736년(영조12년) 본 면의 최 처사 태휘(催泰輝)와 마리면의 이 성택(李聖擇)의 상소로 안음현이 복현되었고 서기1767년(영조43년)에 안의(安義)로 고쳤다. 서기1895년(고종32년)에 제현(諸縣)을 모두 군(郡)으로 바꾸면서 본 면의 북부인 사마(司馬) 황산(黃山) 당산(棠山) 모전(茅田) 무어(舞於) 월치(越峙)를 안의군 북하면이라 하였고 서남부인 거차(居次) 남산(南山) 우곡(牛谷) 강남(江南) 상천(上川) 신계(申溪) 부곡(婦谷) 마항(馬項) 강동(薑洞) 역동(嶧洞)을 안의군 고현면(古縣面)이라 했는데 행정구역을 폐합한 서기1914년까지 19년간 존치되었다. 일제 초인 서기1914년 3월 1일 고현면과 북하면을 합하여 위천면(渭川面)이라 칭하고 거창군에 편입시키면서 북하면 육촌 중 월치(越峙)를 주상면으로 분속시키고 관내를 법정 7개리 인 장기리(場基里) 남산리(南山里) 상천리(上川里) 강천리(薑川里) 대정리(大亭里) 당산리(棠山里) 모동리(茅東里)로 현재까지 이르다가 서기1995년 8월18일 거창군 조례제1369호에 의하여 대정리를 황산리(黃山里)로 고쳤다. 서기1945년 광복이 되고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된 후 7개 법정리 내에 19개 행정리를 두어 제반 행정에 이바지토록 하였다. 장기리에 장기(場基) 창촌(倉村) 사마(司馬) 거차(居次) 남산리에 남산(南山) 금곡(金谷) 상천리에 상천(上川) 서원(書院) 강남(江南) 강천리에 강동(薑洞) 마항(馬項) 면동(眠洞) 대정리에 황산(黃山) 동촌(東村) 당산리에 당산(棠山) 모동리에 모전(茅田) 석동(石洞) 원당(元塘) 무월(舞月)이다. 서기1995년 조례개정에 의하여 법정7개리중 대정리를 황산리로 개정함에 따라 행정 리도 “황산1구(黃山一區)” “황산2구(黃山二區)”로 개정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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