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 불고대 밑에 있다. 박약재 강위용을 기리는 비로 서기 1968년 후손들이 세웠으며 화산 권용현이 비문을 짓고 연안 이영달이 글씨를 썼다. 박약재 강위용은 진양인으로 1558년에 성균관진사를 하였고 학문이 깊었으며 도덕이 장한 유현이다.
역문 박약재 선생 유허비명 병서 오직 이 안음의 사마리는 즉 옛적 박약재 선생 강공의 처음 터로 한바라 선생의 휘는 위용이요 자는 문망이니 강씨는 진양의 거벌이 되어 진사 동와공 삼은 그 아버지시며 개암선생 익과 죽헌공 진은 그의 숙부와 계부이라 선생이 중종 병신년에 났으되 전광을 배태하여 어려서부터 민첩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순순히 이어 어긋남이 없으니 개암선생이 항상 가성이 떨어지지 않았더라. 어버이 명으로써 치공 거업을 겸하고 모든 체대를 갖추어 장성하여 사원에 입사된지라. 나이 23세에 무오의 사마(진사)안에 드시고 거의 현책(나라에 올리는 계책)이 실효되지 않은즉 문득 뜻을 돌리어 세상관작에 뜻을 끊으시고 오직 마음과 몸을 위하는 학문인 중용 대학 근사록 등 서적을 갖추어서 생각하고 되새겨 거듭 토론하여 성리의 근원을 정밀히 연구하여 몸과 마음의 사이에 체험하며 또 송나라 어진 이와 우리 동국 선생의 유적에 나아가서 참여 고정하여 마음가짐과 몸의 행함에 요긴함을 구하여 보고 스승의 법도를 나타내었더라. 손으로 기록하고 입으로 외우며 오직 날마다 부지런이하며 힘써 행함을 알며 그 공을 이름을 새기며 일찍 천군전이란 기살ㄹ 지으시어 마음의 묘한 법도를 발휘하니 모두가 깊이 체험하고 묵묵히 근실하여 고인들의 뜻을 얻게 됨이라 임갈천 첨모당 두 현인을 찾아 놀며 또 정역양 성석곡 여러 현인과 도의로 삼을 만한 기록의 자료됨이 많았더라. 그전에 개암공이 남계서원을 창건하던 것을 공이 뒤이어 그 마치지 못하였던 일을 마쳐서 조두의 의례에 성의를 나타내어서 그 현을 높이고 도를 옹위하는 뜻을 이루었다. 사마리에 처음 거함은 석대 아래 학담 위에 재실 짓고 현판을 박약재라 함은 대개 학문은 넓게 하고 예의를 약속함이여 그대의 이름을 불고라 함은 대개 의를 공경하고 덕을 쌓으면 외롭지 않다는 뜻으로 이것을 취함이라 대저 박약의 공부와 경의의 학이 성문의 전해오는 지결이 되어서 선생의 이름과 그 재실과 대 이름이 이에 벗어나지 않은 즉 그 배움의 깊은 점이 진실로 갖춘 바로 생각된다. 선생이 날마다 어진 벗과 오는 제자와 학문을 상고하고 도를 강론하는 것도 여기서 함께하며 벽에 10도를 걸고 8경을 읊음이 수신해서 나가는 뜻이 환하여 스스로 즐거움을 충분하게 얻었더니 아깝다. 천명을 넉넉히 못 빌려 선조 을해에 졸하니 겨우 40이더라. 이때를 당하여 네 아들 면 함 윤 찬이 어리고 여러 조카가 각기 흩어져 있어 남기신 문적을 간수치 못하고 이곳저곳 흩어져 타다가 남은 영사정운이 있으니 『지난날의 전설을 들으면 영계(유영계)가 이 정자를 지었더라 골바람 불어 나무베개 서늘하고 언덕에선 버드나무 못에 들어 푸르구나 춘산에 고운 경치 글로써 잡아보니 밤하늘 밝은 달은 술잔에 가득하다. 오늘의 깊은 정과 즐거운 이 광경을 선현님이 즐겼으니 어찌타 감할쏘냐.』그 나머지는 있을 것이 거의 없으므로 그 고상하신 은표를 고증할 수 없어 말하느니 원통할지라. 그 후에 고을 사람들이 학림원을 세우고 고을의 6현을 모실제 선생도 향사에 강신하시게 함은 가히 덕 있음을 누구나 확신할 수 있고 선생의 의론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세대가 아득히 멀어지고 서원을 나라에서 금항 거둔지 또 오래되어 유풍이 장차 잊으려져도 오직 옛 마을의 석대와 시냇물은 옛 과 같이 그 당시 노시던 발자취를 나타내어 추모케 하고 고을 사람들이 지적하게 되어 후손이 이 대면에 각했으되 오히려 사실의 기록이 없어 그 자취를 표하지 않으면 멀리 오래도록 표시하기 어려움이라 다시 의론하여 그 아래 한 비석을 세워 알리고자 할새 후손이 선생의 조카 도승지 봉람의 지은 행장문을 품고와서 나에게 증하고 말하거늘 내가 선생의 행풍을 일찍 들은지라 능히 사양하지 못하여 이에 감히 지음을 추렸으며 이어 새겨 말하되 선비의 귀함이여 오직 배움에 있도다. 약을 넓히고 의를 공경함이여 이가 적실됨이로다. 선생의 뜻이 이에 있음이여 가르친 바로 가니 자나 깨나 구함이여 이름 이에 있도다. 도가 유유함이여 수레 주축 부러지도다. 뜻은 어찌 길게 함이여 명은 어찌 요사런고 안자의 즐기던 골목이여 오히려 이 땅에 있으니 남기신 자취를 만져 누가 슬퍼않으리오 돌도 넓고 우뚝함이여 같아도 이지러지지 않고 물 많게 쏟아짐이여 흐름도 쉬지 않음이라. 방불하게 나타남이여 선생 뜻과 기질이니 사람에 받춤이 능함이여 들보 쌓아 세우시다. 내가 사연 돌에 새겨 오는 이여 공경할지어다. 무신(1968) 월 일 화산 권용현 삼가지음 연안 이영달 공경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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