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금원산과 기백산 두 태산자락에 있는 마을로 약900년 전인 고려 숙종 때 창동 되었다고 전한다. 신라 때 강남사가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석불이 남아있다. 물 건너 한수리 쪽으로 오르면 “진등”마을과 “점터” 마을이 있고 금원산 쪽으로는 지재미가 있다. 마을 뒤 서쪽 심심산천은 온통 경승보고이다. 1993년에 금원산 자연 휴양림이 개장되어 특히 여름철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점터(店基) : 금원산 동쪽 기슭에 있는 마을이다. 금원산 곳곳에서 쇠를 모아서 이곳에서 연장을 만드는 점이 있었다. 정희량이 여기에서 무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화강석 채석장이 있다.

▸강남불 석조불상 : 마을 앞 논 가운데 있다. 높이 3.5m 너비1.5m의 화강석에 불상이 부각되어 있다. 넓은 광배가 있는 신라석불이다. 이 부처로 인하여 이곳을 “부처지이”라 한다.

▸서덕못 : 위천면의 서덕들을 적시는 큰 저수지다. 성윤동(成允仝) 병마사가 큰 구렁이를 없앴다고 하며 1626년 정온 선생이 경상감사로 있으면서 못을 수축하였다 하며, 1940년께 크게 고쳤다.

▸영모재(永慕齋) : 청주인 경필휴(慶必休)와 아를 홍래(弘來)를 위한 묘각이다.
▸문바위 : 지자미 골짜기에 있는 큰 바위이다. 가섭사 앞에 있으므로 가섭암(迦葉岩)이라고 하며, 고려 말 이원달(李元達)과 부인 김씨가 나라 잃은 한을 안고 숨어 살았기에 두문암(杜門岩)이라고도 한다. 그 안 골짜기를 순절동이라고 한다.

▸마슬암(磨膝岩) : 마을 북서 1Km에 있는 비스듬한 바위벼랑이다. “베루바위”라고도 하는데 고려 우왕 14년(1388) 왜구가 왔을 때 효자 반전(潘腆)이 피난길에 아버지를 업고 바위벼랑을 기어가면서 무릎이 달아 피가 났다하여 “피발린바위”라 하던 것이다.
▸미폭(米瀑) : “쌀이는 폭포”, 동암폭포 라고도 부른다. 지자미 골짜기 어귀 북쪽 산기슭에서 너럭바위를 비스듬히 흘러내리는 폭포다. 옛날 폭포 위쪽에 동암사(東菴寺)가 있어서 쌀 씻는 뜨물이 흘렀고, 절이 없어지고 나서 서당이 생겼으므로 “동암지서당터”라고 하며 지금도 주춧돌이 남아있다.

▸선녀담(仙女潭) : 금원산 어귀에 있다.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기우암(祈雨岩) : 무제바위·지우암이라고도 한다. 가섭사 터와 문바위 사이에 있는데 신라 때부터 무제터이고, 고려 현종 3년(1012)에 전국 기우제를 여기서 지냈다고 한다.
▸지잠동(芝岑洞) : “지재미”라고 한다. 금원산의 동쪽으로 터인 골짜기를 통 털어서 지재미골이라 하는데 지장암이 있던 골짜기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경치가 좋아서 지금은 “금원산 자연휴양림”을 조성하여 관광지로 개발하였다.
▸서문암(西門岩) : “서문개바위” 라고 하며 상혈암(上穴岩)이라고도 한다. 서문(西門)씨의 자손들이 공부하고 노닐던 곳이이라 하며 바위 위쪽이 갈라져서 상혈암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가섭사지(迦葉寺址) : 지자미 북쪽 골짜기에 남향한 중턱에 신라 때부터 1770년대까지 있었던 옛 절터이다.
▸가섭사지 마애삼존불 : 가섭사 어귀에 있는 큰 바위 덤불 속에 있다. 높이 3m 너비 2m의 심엽현윤곽 안에 삼존불을 부각했다. 고려 초기인 12세기 초의 작품이라고 하며 보물 530호로 지정되었다.

▸고탑폭·구시소 : 지자미 남쪽 골짜기 막바지에 있다. 통폭·용폭 이라고도 한다. 폭포 밑 구시소 가에서 정희량이 물소리에 망치소리를 감추어서 무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유안청(儒案廳)폭포 : 흰 내리 반석 위를 물줄기가 세차게 흘러내리는 장관을 이룬다. 옛날 이곳에 유생들이 공부하던 유안청 터가 있다.
▸금원산(金猿山) : 위천면의 서쪽 끝에 솟아 함양군과 북상면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1,332m의 산이다. 옛 감음현의 진산이다. 산속 계곡의 수석이 뛰어나 지금은 자연휴양림을 만들어 많은 관광객이 찾게 되었다.
▸금원암(金猿岩) : 금원산 중턱에 있는 바위로 옛날 산속에 금빛이 나는 원숭이가 날뛰고 다니므로 한 도사가 이 바위 속에 가두었다는 전설에 따라 이름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산 이름도 생겼다.
▸영모재 : 청주경씨 입향조 사창의 5세손 첨지 이와 그의 아들 용양위절충장군 휘 일휴, 필휴, 함휴 3형제의 세향 지소로 이의 4세손 이형이 중심이 되여 후손들이 세웠다. 위천면 상천리 장등에 있으며 목조와가 3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