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1609년에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즉위 원년에 동복형 임해군을 제거하고 이듬해 새로 지은 창덕궁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하려 하였다. 이때 정언(正言)으로 있던 향토 출신 동계 정온(桐溪鄭蘊)은 이것을 만류코자 직간하다가 함경도 경성판관으로 좌천당하였다. 1613년 광해 5년에 대북파의 정인홍(鄭仁弘) 이이첨(李爾瞻)등은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가 있었다고 모함하여 대군의 외조부인 김제남(金悌男)을 죽이고 선조왕비였던 인목대비를 서궁에 가두었으며 영창대군을 서인으로 폐출하여 강화도에 유배했다가 그곳 부사 정항(鄭沆)을 시켜서 모질게 죽이는 등 폐모살제의 패륜을 저질렀다. 이때 정온(鄭蘊)은 스승 정인홍에게 도리에 어긋남을 서면으로 논박하고 사제간의 의를 끊었으며 광해군에게 영창대군의 위호를 복구시킬 것과 신하로서 왕제를 죽인 정항을 목 벨 것을 극간하다가 제주도의 대정(大瀞)에 유배 되였다. 유배를 당한 정온은 대정에서 많은 저술과 우국충정의 시구를 남기는 한편 제주도민교화에 힘쓰다가 10년만인 1623년 인조반정 끝에 풀려나와 극형을 받은 정인홍의 시신을 수렴함으로써 옛 스승에 대한 의리를 다하였다. 서기1624년인 인조2년에는 이조참의로서 반정 때의 논공불만으로 일어난 이괄(李适)의 난을 당하여 공주(公州)에 호종하였으며 계속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대사간에 올랐으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임코자 하니 인조는 특별히 경상도 관찰사를 제수하여 봉친토록 하였다. 이때 고현의 서덕들 위에 있는 서덕언(서덕 저수지)을 개수하는 등 향토산업 진작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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