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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충의
정온(鄭蘊)
문간공 동계선생이다. 그는 인품이 장중하였고, 충효를 겸전한 위인이다. 진사 정유명의 둘째 아들로 서기1569년 2월6일에 강천리 역골에서 출생하였다. 스물 네 살 되던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함양으로 부친을 따라 종군하였다. 진사과와 문과에 급제하였고, 마흔여섯 살 되던 해에는 죽음을 한하여 영창대군의 처형이 인륜에 어긋남을 상소하였으며 서기1627년에 금나라가 정묘호란을 일으킴에 오직 충심으로 왕을 도왔고 서기1636년 12월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니 선생은 이조참판으로 왕을 호종하였다. 서기1637년 1월27일 왕이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자 선생은 척화신으로 이를 분개하여 통곡하면서 차고 있던 칼을 빼어 자기 배를 스스로 찔러 자살코자 하였다. 또한 인조반정 때는 인연을 끊었던 옛스승 정인홍이 처형되어 그의 시체를 돌볼 사람이 없게 되자 선생은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시체를 수습하여 옛 사제의 의를 다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만년에 덕유산 속 모리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나니 춘추 일흔 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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