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수 신권(愼權)선생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강학당이다.

지 정 일 : 2005.01.13
소 재 지 : 황산리 766
시 대 : 조선시대
서기 1542년에 구연재와 남쪽 척수대 사이 물가에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그 뒤 다시 큰물을 만나 서기1805년에 후손들이 수승대 건너 지금 자리에 옮겨 세웠다. 우거진 송림과 오묘한 바위들 그리고 위수의 맑은 물이 어우러져 원학동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요수 선생은 요수정원운의 일부에서 정이 산수 간에 있으니 산수가 서로 어울리도다. 물은 산으로부터 나오고 산은 물위에 떠있도다 라고 하였다.

대체로 산수의 미칭이 사람에게 적중하니 어찌 험준하게 높고 깊숙이 길다하여 이름이 나리요. 안의는 산수가 모인 곳이다.

수승대와 구연서원과 요수정이 있으니 대는 곧 요수 신선생이 소요하던 유지요, 서원은 선생과 성 석곡선생 그리고 육세 손 황고선생을 배향하는 곳이요, 정은 또한 요수선생이 머물던 곳이다. 양 선생이 궁리와 진성으로 종사하고 강업하며 전도로 자신의 임무를 삼아 낮과 밤으로 독실하게 나아가 높이 영남의 사표가 되고 황고선생은 학문에 연원이 있어 도암선생에게 종사하니 도암이 스승으로 아니하고 벗으로 대하며 시를 주어 말하되 천리의 벗이 반갑기 구면 같다. 선을 같이 하는데 무슨 선각후각을 논하리오. 하니 아-아 또한 성하도다. 요수 석곡 독행의 실적과 황고계술의 업적이 이에 남아있고 퇴계께서 명명한 글자와 삼연 역천 양 선생 화답의 시가 다 같이 돌에 새긴 연후에 대와 정의 좋은 경치가 더욱 나타나리라. 삼선생의 유풍은 모든 전현들의 증평이 산수와 같이 길이 천고에 생생하리니 이르는바 산수의 칭미가 사람에 적중함이다. 또 삼 선생이 이 산수를 사랑하여 정자를 짓고 강마함이 어찌 다만 산수만 위함 이리요. 마음을 인지에 두어 뜻을 산수에 부침이라. 후학들이 여기에 유람하느니 만일 그 진의를 알지 못하고 단지 그 밖을 보면 어찌 그 삼선생의 본뜻을 얻으리오. 옛적 고무담이 류자후로 인하여 그 이름이 들어나니 특히 일시 문장의 저술에 불과하되 지금까지 사람의 이목에 빛나거늘 하물며 이 수승대가 고무담과는 그 경중의 분간이 천지차이다. 이제 이 산수가 그 사람을 얻어 중함이 의심 없는 학론이 아닐 수 없다.
요수의 후손 재익·종태는 곧 나의 친구다. 나에게 기문을 청하니 매우 약소한 나로서 어찌 감히 글 짓는 사람으로 자처하리요. 그러나 선현의 유적을 세상에 남기고 후세에 법이 될 것이므로 오래되면 혹 없어질까 하여 감히 사양치 않고 그 만의 하나를 엮어 삼가 손을 씻고 쓴다. 풍양조영하 근기
요수정(樂水亭) 현판「차운시(次韻時) 등 편액」8점 2006년 6월~7월 23일 사이 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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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차퇴계선생운(謹次退溪先生韻)
작가 김인순(金麟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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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운시(次韻詩)
작가 자방(紫庬)
이병오(李秉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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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차운시(次韻詩)
작가 이교두(李敎斗)
연대 戊戌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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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가요수정운을빌어
(敬次樂水亭韻)
작가 종명(宗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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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칠언율시 작가 병교(炳皦)
연대 丙午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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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차판상운이수((次板上韻二首)
작가․연대 신태도(申泰道)-己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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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차운시(次韻詩)
작가․연대
신종진(愼鍾晉)-丁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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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수송석화연
작가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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