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퇴계선생의 기제 수승대(寄題搜勝臺)
안음 고현에 계곡이 있는데 속명이 수송대(愁送臺)이다. 천석이 너무나 좋다고 하여 구경코자 하나 여가가 없어 못가는 것이 한이 된다. 그 이름이 좋지 못하여 수승(搜勝)으로 바꾸자 하니 모두가 좋다고 하였다.

또한 이웃 영승(迎勝)마을에서 지은 다음과 같이 시 한수로 유서 깊은 종래의 수송대(愁送臺)가 수승대(搜勝臺)로 바뀌었다.
대명을 수승(搜勝)으로 바꿔 지으니/새로 맞는 봄경치도 더욱 곱구나/
먼 숲은 꽃 봉우리 터 질려 하고/ 음지쪽엔 흰 눈이 아직 남았네/
붙일 곳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상상의 회포만 더하여 가네/
이 다음해 한 두루미 술 차려놓고/ 큰 붓으로 단애(丹崖)에 써 놓아 보리/

라제전명수송대(羅濟傳名愁送臺) - 신라백제에서 전한 이름 수송대요,
요수개명암구대(樂水改名巖龜臺) - 요수선생이 개명 이름은 암구대라.
퇴계석명수승대(退溪錫名搜勝臺) - 퇴계가 내린 이름은 수승대요,
유풍송명요수대(遺風誦名樂水臺) - 유풍으로 읊는 이름은 요수대라.
2. 선생의 내방사유
선생의 장인 되는 권질(權礩)의 회갑이 1543년인 중종 38년 1월 4일이었으므로 전날인 1월 3일에 와서 1월 7일에 급히 떠났다. 권질은 아버지인 권주가 갑자사화로 피살되자 자신도 연루되어 3년 귀향 후 유배를 마치고 1538년에 예안에서 가족을 이끌고 영승(迎勝)인 그의 처향에서 우거하게 되었다. 선생이 영승을 찾을 때는 장인이 영승에 우거한지 5년 뒤였고 선생은 장인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하여 안음 영승을 찾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