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1498년인 연산4년에 그는 첫 번째 사화인 무오사화를 일으켰으니 그 내용인즉 성종 때 영남출신 사림파 김종직(金宗直)의 제자인 김일손(金馹孫) 등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풍자하여 항우에게 죽은 의제의 고사를 비유한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일이 있었다. 연산 초에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이 극돈이 춘추관 당상이 되어 이 사초를 발견하고 이를 계기로 사림파의 숙청을 위하여 연산군을 충동하였다. 이에 연산군은 김일 손등의 사림파를 처형하고 이미 죽은 김종직을 부관 참시하는 형벌을 가해 사림파의 기세는 크게 약화되었으며 김종직의 제자인 정여창 김굉필 등을 비롯한 영남 사림은 크게 화를 입었다. 이때 권시민은 김굉필의 문인으로 일찍이 생진을 거쳐 세마벼슬을 하다가 처의 고향인 안음 사마리(司馬里)로 내려와 정확계(鄭蠖溪) 등 어진이와 더불어 강마도의(講磨道義)하며 살다가 황산(黃山)마을 뒤 계양동(桂陽洞)에 묻혔다. 그는 초계정씨 원종공신 목사 정종아(鄭從雅)의 여서(女壻)로 안동인이며 호는 삼괴당(三槐堂)으로 서기1780년 정조경자에 학림서원(鶴林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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