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진총후는 고려 예종조에 상장군 겸 신호위상장군이 되었고 서기1126년 적신 이빈겸을 토평한 공으로 여양군에 봉해졌다. 그가 여양을 식읍으로 하사 받음으로써 후손들이 관향으로 삼았다. 그런데 진총후의 선대는 본래 중국 사람으로 북송 말엽 우윤벼슬을 지내던 복주 사람으로 진수가 요금의 난을 피해 가족들을 데리고 고려에 건너와 여양에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그가 여양군에 봉해진 것과 본관을 여양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시조 진총후의 14세손 진극경은 자가 경직 호가 백곡으로 백곡공 파조이다. 그는 남명 문인으로 도학이 깊었다. 22세손 진해순(陣海舜)은 1820년대에 진주에서 면동으로 우거하였다. 그 후 1820년대에 24세손 호성(灝成)이 이어 면동으로 이거하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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