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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유현(19명)
조숙(曺淑)
선생의 자는 선경이며 호는 죽헌이다. 창녕조씨 입향조인 판서공 중인의 증손이며, 현신교위인 승로의 아들로 서기1504년에 황산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글을 좋아하였고 도덕을 숭상하였으며 평생을 공직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였으며 깨끗하게 살다간 위인이다. 일찍이 임석천문에서 글을 배워 26세 때 사마양시에 합격하였고, 36세에 대과급제하여 내직으로 승문정자 저작박사 홍문정자 상시직장 춘추관기주관 성균관전적 사관원정언 장락원첨정 예조좌랑 성균관사예 홍문수찬 부교리 사헌부지평 사간원헌납 호조정랑 복사시첨정 응교 이조정랑 홍문관전한등을 거쳤고 외직으로 광양 흥양 광양갱재 낙안 영암 광주 풍기 회양부사를 역임하였다. 서기1543년에 영승에서 퇴계선생을 맞이하여 한자리에서 시를 지었고 학문을 논하니 퇴계는 죽헌을 매우 칭찬하였고 임금에게 추천하여 장락원첨정에서 예조좌랑으로 승진케 되었다. 선생의 저술은 상당히 많았으나 병란에 대부분 잃고 남은 것을 가까스로 수합한 것이 죽헌 문집4권이다. 이중에 청포증조대헌이 있는데 이것은 중종 때 혁신정치를 하다가 간신 일파에게 화를 당한 조광조 일파에 대한 신원을 주장한 상소다. 선생은 여기서 국가의 원기는 선비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강력히 역설하였다. 또한 문집에 수록된 시운 320 여수중 자경 시에서 행신은 마땅히 봄 얼음 위를 걷는 듯 하고 옛 어른들의 유훈을 가슴에 새겨서 반드시 경계하고 삼가며 조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선생의 출처지의는 철저하였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신조 가운데 가장 귀중한 것 중의 하나가 출처지의이다. 아무리 높은 벼슬이라도 함부로 나가서는 안 되며 벗이나 스승도 함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출처지의로서 유명한 하서선 생문에 출입하였다 하니 더 물을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조선시대 선비가 운데 출처지의에 가장 치중한 분이 남명선생이었다 한다. 선생은 당대의 현유 퇴계 이황 소재노수신 청련이후백 임당정유길 정헌이윤경 양곡소세양 석천임억령 호음정사용등과 추수종유하였고 향우 갈천임훈 첨모당임운 요수신권 역양정유명 등과 친히 지냈다. 만년에 임금에게 걸귀소를 올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황산 정안동에 낙성재를 짓고 학문을 탐구하다가 서기1583년에 세상을 떠났다. 역양 정유명이 제문에서 그 인후한 자품과 정대한 덕행을 이까리며 통곡하였고 동계 증손 정중원이 지은 그의 묘표에 인의가 아니면 베풀지 아니한다는 맹자의 교훈을 그대로 실천한 위인이라 하며 추앙하였다. 서기1780년에 사림들이 추증하여 학림서원에 향사하였고 선생의 장수지인 황산 정안동에 사적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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