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천면 황산리 531번지 안골 마을 건너 동쪽 언덕 밑에 있다. 화천 유한을 묘사지내는 재실로 서기1937년 봄에 종중에서 지었다. 유한은 관행이 거창으로 그의 호가 화천이며 벼슬이 전생서령 겸 훈련 주부에 이르렀다.
역문 황강재 중수기 안음 고을 삼동에 뛰어난 경치는 온 지역 가운데서 우두머리라 할 수가 있는데 원학동은 더욱 뛰어난 동네 가운데서도 또 특수하다고 하겠다. 동네 가운데에 황산은 뾰족한 봉우리가 고리같이 둘렀는데 명랑하고 아름답게 공중을 비추었으며 형세는 관찰한 듯하나 기운은 모이었는데 그 동쪽에 나가서 도끼 모양으로 높이 봉축하여 언덕을 이루었고 나무를 심어 아름드리가 된 자는 옛날 통훈대부로 행직이 전생서령 겸 훈련주부인 화천 유공 휘 항의 묘소이다. 묘소 아래에 재실을 지어 봄가을로 분필마련 하는 곳을 삼고 액자를 황강이라 한 자는 산 이름을 인용한 것이다. 해가 오래되고 집이 퇴락하여 가히 지탱할 수 없더니 1937년 봄에 여러 고을에 여러 자손들이 합의하고 새 목재를 운반하고 옛 제도 보다 확장하여 오칸 집을 세우고 담장을 둘러쳤으니 이제야 재계하는 방과 제물 차리는 곳이며 돈목을 강하는 청당 조차 질서 정연하였다. 운물의 경관을 고친 듯 하고 계산도 화려함을 더하였으니 방불하게도 정결한 영혼이 계시어 아침저녁으로 오르고 내리시는 듯하였다. 이미 문중에 수재인 주용을 시키어 나에게 사실 기록할 글을 지어 달라고 한다. 삼가 알찬하건데 고려말기에 밀직도헌을 지낸 영계선생께서는 하늘의 운명이 변천하는 기회를 만나서 몸소 세상에 나가지 않는 절개를 지키고 새 조정에 섬기지 않음을 굳게 하고 안음으로 물러와 숨으니 당시에 정포은 길야은과 백중이 될 만 하다는 칭찬이 있었다. 이때부터 복을 내려주고 덕을 심은 것이 참으로 유래됨이 깊다 하겠다. 공은 영계선생의 어진 손자로서 선대의 덕택에 태어났고 집안에 전래하던 업적을 답습하여 바른 학문을 강마하여 밝히었으므로 행세하는 예의가 날로 들어났다. 그러므로 언덕에서 학우는 소리가 하늘에 들리어 청직을 모두 거친 뒤에 전제별검을 제수하여 공로가 현저하였으나 후퇴하고 자랑하지 않았다. 구원에서 태평하게 살다가 돌아갔으니 어찌 천길을 나는 봉황새와 같을 뿐이겠는가? 의당 그 남긴 덕택이 아들 손자증손 현손에까지 미치어 문행과 충효가 앞뒤로 빛나고 밝았으니 백년을 뻗어가며 민몰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에 온 누리의 인도가 멸망되었으니 부모에 효하는 것이 인도의 근본이 되는데 근본을 이미 상실한 자로서야 하물며 가히 오래도록 쇠퇴하지 않을 여지를 의논하겠는가? 유씨의 제공들이 이러한 때에 주잘함이 이와 같았으니 또한 가히 조상을 추모함이 독실하여 세상 풍속을 단속할 만 하다고 이르겠다. 비록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외면이 된다. 오직 선영에 올라 서리와 이슬을 밟고 선조의 풍치와 절개를 사모하며 시내에 임해서는 천석을 사랑하고 선현들의 유풍을 얻어서 마음을 씻으며 그 몸을 정결하게 하여 더욱 내실에 닦기를 구한즉 공의 끼쳐준 혜택이오는 세대에 없어지지 않으리니 충효와 문행이 또 어찌 지나간 옛날의 번성함과 같지 않겠는가? 이것이 유시 제공들에게 있다 하겠다. 이번 공사에는 경환 한제 계삼 진만 병숙이 더욱 종합하여 주관 하였다 한다. 1937년 남지절에 서주 정기는 기문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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