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간공 동계 정온 종택(文簡公桐溪鄭蘊宗宅)은 국가지정 문화재이다.

지정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205호
지 정 일 : 1984.12.24
시 대 : 조 선
소 재 지 : 위천면 강천리 50번지의1
동계 정온(1569~1641년) 선생의 사당을 모시고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종택으로 대문채, 큰사랑채, 중문간과 중간사랑채, 곡간채, 안채, 안사랑채, 가묘, 토석담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는 솟을대문이며 인조임금이 내린 “문간공 동계 정온지문(文簡公桐溪鄭蘊之門)”의 정려 현판이 걸려있다. 정면 6칸 전퇴(前退)가 있는 2칸 반의 사랑채는 ㄱ자 형이며 사랑채 상량대에는 “숭정기원후 사 경진삼월(崇禎紀元後四庚辰三月)”이라 기록되어있는데 이는 순조 20년으로 서기 1820년에 해당된다. 사랑채 마루 벽에 정조임금이 지은 현판이 걸려있는데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日長山色碧嵯峨(일장산색벽차아)세월은 흘러도 산은 푸르고 높으며
種得乾坤正氣多(종득건곤정기다)정기로운 기운은 온 천지에 가득하네
北去南來同一義(북거남래동일의)북으로 가거나 남으로 오거나 의리는 매 한가지
精金堅石不曾磨(정금견석부증마)금석같이 정결하고 굳은 절개는 아직도 삭아 없어지질 않았다.
안채는 남향으로 정면 8칸 측면 3칸 반의 전후퇴(前後退)가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는 기단이 낮은 반면에 툇마루가 높게 설치되어 있다. 곡간채는 서편에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되어있다. 마당 동쪽에 서향한 아래채가 있는데 4칸 집이다. 가묘(家廟)는 안채의 후원에 삼문(三門)을 낀 낮은 토석담장 안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적인 집안 건물의 배치는 남부지방 양반집 형태를 잘 갖추고 있으며 각 신분에 따라 공간구별이 잘 구분된 조선시대 건축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주거시설로 현재 종부(宗婦 : 경주 최 부잣집 맏딸)와 종손이 거주하며 관리하고 있다.
안내판
선생은 영창대군의 처형을 반대하여 제주도에서 10년간 귀양살이를 하였다. 병자호란(1636년) 때에는 화친을 반대하여 자결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선생은 광주 현절사(廣州顯節祠) 제주 귤림서원(濟州橘林書院) 거창 도산서원(居昌道山書院) 함양 남계서원(咸陽蘫溪書院)에 배향되어있다.




<종가집 종부 : 최희(경주최부잣집 맏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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