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범 선비가 이 세상에 출생하여 경제지재(經濟之才)와 충근지지(忠勤之志)를 싸가지고 바야흐로 어지러운 세상에서 화기를 풀어주고 이미 기울어진 환경에서 신기를 정리하여 국가가 위태함을 좇아 안정을 얻게 하고 생민이 울음을 돌리어 웃음을 짓게 하여 공훈은 금석에 새기고 이름은 죽백에 전하는 것은 즉 명신석보(名臣蓆輔)가 사람의 이목을 진동 시키는 것이다. 암혈지간(巖穴之間)과 봉필지하(蓬蓽之下)같은 데서는 비록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진실로 그 직위가 없는 즉 그 일을 만나서 가히 볼만한 것은 일향 일읍의 밖을 나가지 못하여 겨우 대통의 표피와 바다의 표주박물이 되나니 이것이 어찌 그 재주와 그 뜻이 사람에게 미치지 못한 것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겠는가. 특히 그 있는 곳이 같지 못하여 시조(施措)가 크고 적은 것이 있는 것이다. 옛날 우리 영조대왕 무신년에 흉적이 본 현에서 일어나 미친 기세가 소리가 날개같이 펴지니 열군이 짐승같이 도망쳐서 서울을 범하였다고 떠들어 형세가 심히 창궐하였다. 이때 처사 태휘(泰輝)가 있으니 경주인이다. 동현(同縣)이 처사 성택을 좇아 스스로 봉적지중(鋒鏑之中)에 나가 반도에서 신위(新尉)를 맞아 난만상의(爛槾相議)하고 적을 토벌하려고 마음에 맹서하였다. 본 현에 돌아오니 적괴는 이미 섬멸되어 그 소굴을 소탕하였다. 조정이 흉적이 일어난 곳이라고 예에 의하여 읍을 혁파하고 고을을 나누어 거창 함양 양군에 부쳤다. 처사가 사직과 향교가 옛날 받들던 의례를 상실한 것으로써 사서(士庶)가 함께 타 죽어야 한다는 탄식이 있었다. 처사가 개연히 흥복할 뜻이 있어 분연히 몸을 돌보지 않고 천리 먼 길에 발이 부르트면서 서울로 가서 대궐에 호소하고 소를 진달하여 소장이 무릇 십 수번 올라갔다. 병진 년에 이르러 겨우 복읍지명이 있었으니 혁파하던 해로부터 복읍하기까지 대개 9년인데 소장을 안고 호소한 것은 7년 이 되었다. 어찌 지극한 정성이 귀신을 움직이고 하나의 마음이 하늘을 감동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여러 해를 나그네 생활의 비용으로 가재가 탕진하여 4벽만 한갓 남아있으니 오히려 호조에 보상 못한 공채(公債)가 있어서 웅천으로 편배(編配)되었는데 미처 사환지명(賜還之命)을 받지 못한 채 돌아갔다. 아! 능히 비적이 충척(充斥)하는 즈음에 주먹을 쥐고 적개지의(敵愾之義)를 분발하였고 성읍을 혁파한 뒤에 피를 뿌리며 투궤지간(投匭之懇)을 진상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지는 것이니 드디어 고을 전체 사민으로 하여금 다시 인정하는 땅에 살면서 경착(耕鑿)을 편안히 하고 또 부모의 고향을 길이 보존하여 승평(升平)시대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였으니 이것은 오직 우리 성상의 함육 곡성(涵育曲成)하는 은택이나 또한 어찌 사인지공(斯人之功)이 아니겠는가 대개 그 경제지재와 충근지지는 만약 본래 축적한 것이 아니라면 일에 임하여 가히 졸연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이 사람으로 하여금 교목지가(喬木之家: 명가)에 나서 헌면지위(軒冕之位)에 처하였다면 그 풍부한 공훈과 위대한 열절이 어찌 일향 일읍에 그치었겠는가. 그 평일 언행 기절이 반드시 크게 사람보다 나은 것이 있을 것인데 집에 전하였던 문헌은 다 타서 없어졌으니 고증할 길이 없다. 도 그 공은 일읍에 있어 향사지열에 오르지 못하였고 자손들이 떨치지 못하여 현양지도(顯揚之道)를 겨를 하지 못하였으니 탄식함을 가히 이기겠는가. 그 5세손 길환(吉煥)과 봉서(鳳捿)가 그 선조의 행적이 점점 인몰될까 두려워 하야 나에게 사실을 기록하여 내세에 전해주기를 요청하였다. 내가 현지(縣誌)를 보니 정유년 왜변에 곽공이 황석(黃石)에서 돌아가신 것을 보고 마음에 항상 흠탄하였는데 무신년 변란에 또 이 최 양현(李崔兩賢)의 일을 보니 일의 미현(숨어 있고 드러난 것)은 비록 같지 아니하나 충의에서 나온 것은 동일하다. 본 현은 하나의 말만한 작은 하읍인데 어찌 그리 충의지인이 많이 나서 전후 서로 연하였는가. 참망(僭妄)함을 헤아리지 않고 그 경개(梗槪)를 기록하여 해벽(廨壁)에 계시하여 이 고을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우러러보아 각궁(각궁은 시경의 편명이니 풍자시로 종친을 멀리하는 임금이 간신을 가까이 하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의 뜻을 붙이게 하노라. 을축년 오월 상순에 지현 홍기주(洪岐周)는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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