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김흥광은 신라45대 신무왕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서기836년 42대 흥덕왕이 승하하고 희강왕이 자립하자 흥광은 장차 국난이 있을 것을 예견하고 무주 서일동으로 피난했는데 3년 동안 대혼란 기였다. 서기839년 신무왕의 첫째 아들 경응이 문성왕에 즉위하여 국난을 평정했으나 그는 무주서 일동에 자리 잡고 살았는데 그 후손에서 평장사가 계속 8명이 배출되고 또 화평 광성 광산부원군 등에 봉해지므로 후손들이 광산을 본관으로 삼았고 흥광을 1세조로 하여 계세하고 있다. 파조 김광철은 호가 둔헌이며 서기1305년에 문과급제 하여 삼중대광밀직사사로 화평군에 봉해졌다. 시호가 문민공이다. 이후 후손이 파조로 삼고 문민공파라 한다. 입향조 김광성(金光成)은 자가 여상(汝相)이고, 서기1600년대 후반에 북상면 월성으로 우거하였다가 다시 갈골로 6.25동란 때 남산동으로 우거하였으며 자손이 남산동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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