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천면 강천리 91번지 강동마을 동단 강당소(講堂沼) 위에 있다. 원래는 확계 정옥견(蠖溪鄭玉堅)이 그의 장수지소였던 사마마을 불고대 앞 학담(鶴潭) 위에 세워 강학하며 시를 읊고 즐기던 곳인데 서기1839년에 후손들이 현 위치로 옮겼다. 건물은 목조와가 3칸이다.
정옥견은 초계인으로 서기 1450년에 출생하여 1526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호가 확계이고 벼슬은 사포서 별제로 일찍이 벼슬을 버리고 임천에 묻혀 학문과 시를 즐겼으며 후에 사헌부 집의에 추증되고 금계서원에 향사하였다.
입재 정종로(鄭宗魯)의 기문과 후손 우순의 이건기(移建記)가 있다.

능허정 이건기
능허정이 옛날에는 학담의 불고대 앞에 있었으니 바로 나의 선조 확계공이 세운 것이다. 공은 영매한 자질로 선조의 아름다운 법을 이어 호제의 독실함과 학문의 깊음은 당시의 추중이 되셨다. 성종말년에 도신의 천거로 사포서별제로 입조한지 말기에 권간들이 용사할 증조가 있으므로 벼슬을 버리고 남으로 내려와 장수(藏修)할 곳으로 이 정자를 지어 글을 읽고 몸을 닦으므로 일생을 마칠 계획을 하셨으며 산수간에서 소영하사 유연히 물외의 자취가 있어 세상의 영고득달을 마음 두지 아니하였으므로 능히 화강을 면하셨으니 이는 견기의 밝음이 그 몸을 보전한 것이다. 사헌부집의에 추증되고 금계사에 향하셨다.
오호라 수백 년 간 정자의 중수도 여러 번이라 서기 1839년에 후손들이 협심하여 다시 강당소 위에 옮겼으며 공의 소시에 강학하던 곳으로 천석이 옛날 같고 정채가 완연한 즉 여기에 이건함이 어찌 마땅치 아니하겠는가.
사수지 어려운 것은 고금에 탄식한 바라 이찬황의 고심유계도 평천장을 보전 못했고 배진공의 적덕여음도 녹야당을 전하지 못했으니 그 사수의 길은 진실로 자손의 성불성에 있는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으랴. 이제 우리 후손들은 오늘 이건을 계기로 항상 선조의 말씀과 행실을 가슴에 새겨 잊지 않고 대대로 전한다면 선조의 영이 반드시 즐거워하실 것이며 문운이 성할 것이요 이 정자도 장차 무궁하게 전해질 것이니 어찌 서로 힘쓰지 않으랴. 불초 이로써 자면하고 또한 모든 후손들에게 바라는 바이다.
첨종들의 유탁을 사양 못하고 참망함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대략 서한 바이다.
서기 1996년 월 일 후손 우순 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