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의 본관은 진양으로 자는 문망이고 호는 박양재이다. 고산현감을 지낸 금재한의 증손으로 서기1536년에 전라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여 글을 좋아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인품이 준수하였다. 숙부 개암선생에게 글을 배워 서기1558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선생은 성리학을 깊이 탐구하였고 진원을 탐색하였으며 대학 중용을 탐독 실천에 옮겼고 효경 근사에 글자마다 심오함을 터득하였으며 송조 명현의 사적과 우리나라 선유의 실행을 넓게 취하여 약함을 얻고 천추의 심법이 물과 달 같이 맑고 밝았다 한다. 또한 선생은 서기1556년에 초계인 정담의 사위가 되어 함양서 사마리로 옮겨와 살면서 임갈천과 첨모당 문하에 출입하였으며 정역양과 성석공 등 여러 어진이와 사귀면서 석대아래 박약재를 짓고 스승을 모시고 벗들과 더불어 학문을 강론하였다. 또한 그 대를 불 고대라 이른 것은 덕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에 있다는 뜻이다. 저서로는 팔경제영 시문 2권 책문 십여 수 천군전 혁양종송 개암 첨모당 양선생의 축문이 있었다 하나 모두 잃었고, 손수 쓴 예기유행편 선유토리음 송조언행록 삼사권이 있었는데 역시 잃어 전하지 아니한다. 특히 선생은 필법이 뛰어났었다하니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기1575년에 향년 겨우 40세 세상을 떠났고, 서기1780년에 학림서원에 향사하였다. 사마리 불고대아래 있는 그의 유허지에 선생을 기리는 유허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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