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

속칭 새앙골이라 한다. 마을 뒤 버드나무 가지에 꾀꼬리 둥지가 있어 새앙골이라 한다. 형국은 와우형이다. 생원 정제안께서 생강을 재배하여 주민들에게 적선하였다 하여 생강장자를 따서 강동이라 한다. 마을 동북쪽을 역골이라 하며 옛날에는 문주동이라 하였으며 고려 효자 반전이 살던 곳이며 동계선생의 출생지이다.
▸빈소골 : 마을 북동쪽 역골의 북쪽으로 트인 골짜기로 정유명(鄭惟明)과 온(蘊) 부자가 아버지 산소를 드리고 시묘하던 곳이다.
▸불목골 : 역골에서 수승대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이곳에서 바람 부는 뱡향에 따라 강동과 황산에서 벼슬이 잇따라 났다고 한다.
▸서원터 : 마을 서쪽에 떨어져 있는 밭 옛날 역천서원이 있었던 곳이다.
▸조산 : 마을 동북쪽 역골 어귀에 있는 돌무덤이다.
▸안골 : 마을 서쪽 100m에 있는 밭들이며 고려 말 이예(李芮)가 살고 이인달·원달·충달 삼 형제가 태어난 곳이다.
▸아래서원 : 마을 동남 끝 위천천과 강천 두 냇물의 어울림에 있는 언덕으로 옛날 금계서원이 있었던 자리다. 서쪽의 역천서원과 대칭을 이루었다. 전 승지 정태균(鄭泰均)이 축대를 쌓아 가꾸었다.
▸개정지 : 마을 앞을 흐르는 강천 냇가, 지금의 마을 어귀 다리 남동쪽을 말한다.
▸첨영재(瞻永齋) : 마을 동쪽 200m에 있다. 성균진사 정제안과 충주목사를 지낸 정종아가 노닐던 곳이다.
▸능허정(凌虛亭) : 마을 동쪽 냇가에 있다. 집의를 지낸 확계 정옥견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입재 정종로(鄭宗魯)의 기문이 있다. 1634년에 창건하였고 19세기에 중건했다.


▸강당소(講堂潭) : 첨영재와 능허정 동쪽 위천에 있는 깊은 소다. 정제안이 가르치던 곳이므로 강학담이라고도 하며, 고현팔경의 하나인 금계재월(金溪齋月)은 이 소를 말한다.

▸모원재(慕遠齋) : 장사랑 정형(鄭泂)과 참봉 정인효가 가르치던 곳에 세웠다.
▸사랑당(仕郞堂) : 역골 북서쪽에 있으며 장사랑을 지낸 정형이 살던 곳으로 장사단(將仕壇)이라고도 한다.
▸강천재 : 강동마을 서쪽 끝인 위천면 강천리 174번지에 위치한다. 문질공 강천 이예를 제향하는 곳으로 서기1902년에 자손들이 세웠고 서기1904년에 정재규가 기문을 지었다. 강천재 후원 언덕에 이예와 이원달 양대의 제단을 모으고 세일제하다가 후에 증설하였다.

▸정유명 신도비 : 역골 정유명 묘소에 있다. 동계 정온의 아버지로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고, 이조 참판을 증직으로 받았다. 김유(金瑬)가 글을 지었다.
▸용문고성(龍門古城) : 마을 북쪽 뒷산에 있는 옛 성터이다. 임진왜란 때 정유명이 쌓았다 하며, 지금도 성곽 일부가 남아있고 우물도 있다.
▸창들(倉坪) : 마을 앞 남쪽 들을 말하며 조선시대 군량미를 거둬 두던 차고가 있었다.
▸반구헌(反求軒) : 동계종택 종쪽에 솟을 대문이 나란히 서 있다. 1870년께 영양현감을 지낸 정기필(鄭夔弼)이 벼슬살이를 청렴하게 하고 퇴임하니 거처할 집이 변변치 못하자 인의현감의 배려와 영양 백성들의 협력으로 마련해 주었다는 집1이다. 원래 가묘·안채·중사랑·광 등이 갖추어져 잇었으나 대문과 사랑채만 남았다. 1996년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32호로 지정되었다.

▸정온선생종택 : 1820년에 중창한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가옥이다.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05호로 지정되었다.

▸반전(潘腆) : 고려 말 산원벼슬을 지냈으며 왜구로부터 아비를 구해낸 효행으로 정려를 내렸다.
▸정유명(鄭惟明) : 초계인으로 호는 역양 중종 34년(1539)에 나서 진사가 되고 효행으로 정려를 내렸고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추증, 역천서원에 모셨다.
▸정온(鄭蘊) : 정유명의 아들, 선조 2년(1569)에 나서 문과급제, 여러 벼슬을 지내고 제주도에 10년간 유배되었으나 인조반정으로 다시 관계에 나갔다가 병자호란 때 척화하고 낙향, 여러 서원에 모셔지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정중원(鄭重元) : 호는 천옹(喘翁) 효종 10년(1659)에 나서 숙종3년(1677)에 진사가 되고 광능참봉, 동몽교관, 세자부를 지냈다. 그 둘째 아들이 희랑이다.
▸정기상(鄭璣相) : 호는 학암(鶴庵) 순조 25년(1825)에 나서 고종2년(1865)에 진사가 되고 고종 11년(1874)에 대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 삼읍 수령을 거쳐서 병조참의를 지냈다.
▸정현상(鄭玹相) : 호는 원와(猿窩) 순조 27년(1827)에 나서 고종 10년(1873) 진사가 되고, 이능창봉을 지냈다.
▸정규상(鄭珪相) : 호는 유당(裕堂) 순조 32년(1832)에 나서 고종 19년(1885) 진사가 되었다.
▸정연갑(鄭然甲) : 호는 개석(介石) 헌종 13년(1847)에 나서 고종 22년(1885) 진사가 되고, 비서감승을 지냈다.
▸정연석(鄭然奭) : 철종 1년(1850)에 나서 고종 28년(1891)에 진사가 되었다.
▸정연시(鄭然時) : 철종 6년(1855)에 나서 고종 28년(1891)에 문과급제, 홍문관 교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