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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마을 유래
황산2구
황산2구

동촌이라고 하며, 황산1구와 호음천을 사이에 두고 연접해 있다. 큰 동네는 “동녁 정촌 뒷골”로 나누어지고 마을 뒤로 조금 떨어진 곳에 죽바우와 홍골 쪽으로 웃말 그리고 동편 정안동쪽으로는 서원과 지안골이 있다. 산기슭 양지바른 곳으로 지형이 평탄하고 맑은 호음천과 정안천이 생활용수를 공급한다. 동네 앞에 기름진 논과 밭이 있어 풍성하며 들 가운데 안정지나무가 유서 깊은 이 마을을 수호한다. 동녘 마을은 1450년경 즉 550년 전에 창동 되었다.
▸학림서원(學林書院) : 지안골(정안동)에 있다. 정조 4년(1780)에 세워서 삼괴당 권시민·죽헌 조숙·박약재 강위룡·금천 유세홍·원암 곽인·난곡 우석일 여섯 분을 모셨던 곳인데 지금은 전사청만 남아있다.

▸서당터 : 정안동에 있다. 조숙이 공부하던 곳이다.
▸조중인(曺仲仁) 신도비 : 정안동에 있다. 어모장군, 주부를 지부를 지내고 황산에 옯겨 왔는데 조 장군이라 부르고, 판서를 증직 받았다고 한다. 14대손 조영래가 글을 짓고 임필희가 써서 1921년에 세웠다.
▸정안재(靜安齋) : 정안동에 있다. 증 판서 조중인의 증조로부터 삼대의 단소에 제사 드리는 제각이다.

▸조숙(曺淑) : 창녕인으로서 연산 10년(1504)에 나서 중종 26년(1531) 진사를 거쳐 중종 35년(1540)에 문과급제, 홍문관교리·사헌부지평·사간, 광양·흥행·약안·풍기 군수를 지내고, 광주 목사까지 올랐다가 선조 15년(1582)에 세상을 떴다.
▸조죽헌 사적비 : 정안동에 잇다. 연재 송병선(宋秉璿)이 글을 짓고 면암 최익현(崔益鉉)이 글을 써서 1899년에 세웠다.
▸지동재(枝洞齋) : 황산 지동(가골)에 있다. 요수 신권의 손자인 당(讜)이 가르치던 곳이다.

▸추원재(追遠齋) : 신제(慎梯)를 기려서 세운 재실이다. 처음에는 동간재라 하다가 이름을 바꾸었다.
▸신성진(慎性眞) : 호는 황강, 영조 28년(1752)에 나서, 정조 1년(1777) 문과급제하여 좌부승지를 지냈다.
▸권시민(權時敏) : 호는 삼괴당(三槐堂), 성균관 진사로 세마 벼슬을 받았으나 연산군 갑자(1504)사화 때 내려와서 학문을 닦았고, 학림사에 모셨다.
▸동안재 : 황산2구 뒷골에 있다. 초계인 생원 정제안을 기리고 그와 세손을 제향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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