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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성씨와 문중
경주최(崔)씨 관가정공파
시조 최치원의 자 고운 또는 해운이다. 12살 때에 당나라에 건너가 17세 때에 급제하여 승무랑대어사내공봉에 이르고 자금어대를 하사 받았다. 제도행영병마도통인 고병이 종사관을 역임한 뒤 귀국하였다. 신라 조에서는 시독 겸 한림학사수병부시랑지서서감이 된 뒤 대산, 천령, 부성, 태수 등을 지냈다. 그 뒤 시무10조를 올려 아식에 이르렀으나 난세를 비판 벼슬을 버리고 전국을 유랑한 뒤 말년을 해인사에서 보냈다. 그는 고려 현종11년 내사령에 추증되었고 13년 문창 후에 추봉되었다. 그는 신라 초에 최씨로 사성 받은 돌산고허촌의 촌장 소벌도리의 24세손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조공의 11세손 휘 청이요 자는 직재문과시랑지검교정승 관가정공파의 파조이다. 시조공의 28세손 휘 종학의 자 귀영(貴永)이 북상면 산수리에서 우거하다 6.25동란으로 인하여 금곡으로 피난을 와서 그 자손들은 상천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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