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천면 황산리 239번지 황산 마을 뒤 학림서원 원정에 있다. 삼괴당 권시민 죽헌 조숙 박약재 강위용 금천류세홍 원암 곽인 난곡 우석일등 여섯 선생을 향사한 학림서원의 사실을 기록한 비로 안동 김영환이 글을 지었고 은진 임필희가 글씨를 쓰셨다. 1944년에 건립하였다.
역문 학림서원 유허비 오호라 여기는 안음의 육군자를 존모하여 조두를 드리던 옛 터로다. 삼괴당 권선생의 휘는 시민이요 자는 달이이며 한훤당에게 배워 성리를 감명하며 뜻을 세우고 행실을 가다듬어 어진자의 추중한바 되었고 세마를 제수하여도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죽헌 조선생의 휘는 숙이요 자는 선경이며 하서를 스승으로 섬기어 경서를 밝히고 행실을 닦으며 간관으로서 시사를 바르게 말하다가 권간들의 뜻을 거슬러 쫒겨나 광양 현감이 되었다가 후에 전랑에 이르렀다. 박약재 강선생의 휘는 위용이요 자는 문망이며 임갈천 정역약 성석곡과 함께 놀면서 도의를 강마하고 경학을 밝히며 결국 깊은 공부는 대학 중용에 있었다. 금천 류선생의 휘는 세홍이요 자는 심원이며 선조 정유재란 때 곽존재준과 동시에 순절하였고 그의 아들 강도 따라 순절하였다. 원암 곽선생의 휘는 인이요 자는 경민이니 자질이 총명 영오하여 일찍이 기형과 율여를 통달하고 만년에 역경을 즐거워하여 심오한 이치를 깨달았고 정동계와 도의의 사귐을 맺었다. 난곡 우선생의 휘는 석일이요 자는 자행이며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 병중에 하늘에 기도하고 몸으로 대신하기를 원하였으며 병이 위독함에 손가락 피를 입에 드리워 회소함을 얻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전하여져 정문의 은전이 내렸고 경자년 예송 때 방예변을 지어 난경의 무리들을 배척하였다. 대저 육군자의 경학과 문장과 충효가 다 족히 사문의 도움이요 백세의 모범이라. 숙종기해에 고을 선비들이 사당을 세워 위패를 봉안하고 학림서원이라 현판을 걸고 높이 우러러 정성을 드렸더니 고종 을축에 국가 명령으로 훼철하였고 그 터에 잡초만 무성한지가 지금 80년이 되었다. 육선생의 후손 등이 서로 슬픔을 머금고 눈물을 흘리며 장차 비석을 세워 그 터를 드러내고자 하매 조기석 권옥현이 나에게 비문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무릇 앞날 어진이의 아름다운 덕을 추모하여 반드시 향례하는 고로 향선생이 몰하면 사에 제사하는 것이니 그 소중함이 이와 같은지라 도를 아는 군자가 아니면 어찌 능히 알겠는가. 한 사당 한 서원의 폐하고 폐하지 않는 것이 세도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하나. 그러나 폐한 후에 폐하지 않는 때와 비교해보면 풍속의 순후하고 야박하며 인심의 착하고 사특함이 어떠하겠는가. 지금 폐색이 날로 심함은 말할 수 없다. 천지지간에 양이 다하는 이치가 없는 것이니 오늘날 이 비석을 세우는 것이 어찌 다만 터를 황폐하게 할 수 없다고만 할 것인가. 일양래복의 기미가 반드시 이에 있을 것이니 모든 선비들은 서로 힘쓸지어다. 갑신 안동 김영한지음 은진 임필희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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