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천면 당산리에 있다. 금사동에 있는 서산정씨 시조 양열공 휘 인경의 6세손인 예안공사인의 묘각으로 대사헌 내암 인홍이 그의 5세손이다.
역문 감모재 기 예안 정공은 당시의 청백리였다. 한번 관직에서 물러난 후로는 더 큰 고을의 녹봉도 사양하고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임천으로 은거한지 거금 500년 전이라 여러 가지 미담이 거창과 안의 땅에 퍼져 많은 사람들이 흠모하고 있다. 이해 가을에 내가 원학동에 유람하다가 이어 금사동을 찾으니 산이 열려 덕유이 남의 제일 좋은 명지였다. 중간에 춘약당의 봉분이 있고 그 아래에 재실이 있으니 현판에 가로되 감모재더라. 내 또한 할 일 없이 이곳 솔숲 언덕을 노닐 때 공의 후손 규완과 진영 만종 기옥이 가로되 이재실의 주관자가 방에 있다하며 청하여 읍하기로 방에 들렀더니 재실의 전후사를 이르면서 나에게 기문을 청함에 내 원래 무식하여 글로는 할 수 없고 말로 답하기를 조상은 비록 백대까지 영원하지만 마땅히 잊어서는 아니 되며 쉽게 잊을 수가 없는 것이라. 예는 그 수가 한정된 차이가 있어 3년에서 석 달까지이니 정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다. 복이 다하면 정이 다하는 것이요 정이 다하면 차차 멀어져서 결국은 자신의 뿌리조차 모르는 자가 많으니 물이 감돌고 양지바른 명당에 선영을 모심이다. 가묘를 세워 제사 지내는 것은 그를 잊지 아니함인데 가묘에서 신주를 옮기게 되면 잊기 쉬운 고로 옛적 정이천이 묘사를 시초하였다. 또한 묘사를 모시려면 재숙할 곳이 있어야 함으로 견씨가 처음 재실 짓기를 시작하였다. 대가 비록 오래 되었다 하나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재실을 이루기란 어려운 일인데 지난날 흥성할 때 짓지 아니하고 하필이면 어려운 이때 짓게 되었을까? 그러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거사를 이룩하였음은 후손들에 귀감이 될 것이며 정씨 가문에 부흥의 징조가 아니리오라고 하니 주인이 말하기를 자네 말씀 듣고 보니 추원의 심정 기름 번지듯 하니 글과 말이 어찌 다르랴 자네의 말씀 그대로 우리 감모재 기문을 써 주오라고 하여 이러하더라. 계유년 가을 초순 은산 박문재 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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