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는 천만리로 자가 원지요 호가 사암이며 시호는 충장이다. 중국 명나라 사람으로 무과에 장원하여 태청전수위사겸 총독오군사를 역임하고 서기1592년 임진왜란 때 영양사겸 총독 장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영양 천씨의 원시조는 천엄으로 명나라 홍무 연간에 도총장에 오르고 판도승상을 지냈으며 그 후손들이 영양에서 세거하였으므로 관향이 되었다. 천만리는 임진왜란 때 군량수송을 담당하여 평양과 직산 동래 등지에서 크게 이겼고 정유재란 때에는 동래 울산등지에서 전공을 세운 뒤 귀화하였으므로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인정하여 화산군에 봉하였다. 시조의 현손 천광석은 증통정대부하고 병자호란 때 진양에 낙향하여 나라를 걱정하고 후진 양성에 진력하였으니 그의 호가 매헌으로 매헌공 파조가 되었다. 매헌공의 7대손 천석호(千錫浩)가 1800년대 중반에 진주서 마리면 섶풀(계동)로 이주하였고 그의 아들 천우락이 1800년대 후반에 마리 섶풀서 이곳 면동으로 우거하였다. 그 후손들은 면동과 상천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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