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

“쇠실” 이라고도 하며 옛날에는 한자로 “우곡”이라 하였다. 마을 뒤편 산록에는 초장이 좋고 앞에는 서덕들을 비롯한 농장이 좋다. 금곡 입구에는 “호동”(여시골) 마을이 있고 서쪽 오제봉 기슭에 “가현”(가재)마을이 있다. 금곡 마을의 정확한 창동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호동(狐洞) : 여시골이라 한다. 서덕들 동쪽 끝에 남향한 작은 마을이다. 조선 중엽에 생겼다고 한다.
▸가현(佳峴) : “가재”라 하며 사방이 산에 쌓여 삼한곡이라고 하는데 고려 때부터 있었던 마을이라고 한다.
▸제당골 : 마을 뒤에 있다. 아래 위에 돌무지 조산이 있다. 정월 보름에 산제를 지낸다. 옛 성터도 있다.
▸동정대(動靜台) : 마을 남서남 100m 떨어진 곳에 있다. 1380년에 순암 유숙(劉琡)이 시를 읊조리고 노닐던 곳이다. 너럭바위와 폭포가 있고 경치가 좋은 곳이다.
▸지체골 : 마을 남쪽 500m의 골짜기에 높이 35m의 폭포와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각시바위·선바위 : 지체골 위 100m에 있다. 고려 말 홍무란 때 한 여자가 왜구에 항거하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남서쪽 300m에 50여명이 비를 피할 수 있는 큰 바위를 선바위라 한다.
▸병풍바위 : 마을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큰 바위다. 이 바위 밑에 장기바위가 있어서 신선들이 장기를 두었다고 한다.
▸석정(石亭) : 마을 남쪽 500m에 있는 돌무더기로 위가 평평하고 밑은 여러 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으며, 등너머 지체골과 폭포가 있다.
▸정대필(鄭大弼) : 위천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유희탁(劉熺倬) : 3·1운동 때 항거하다가 옥고를 치루고 1948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추모재(追慕齋) : 숭정대부 지중추부사 권락철(權珞喆)을 기려서 1976년에 세운 재실이다.

▸오선대(鰲仙台) : 마을 서쪽 300m에 있다. 정봉 유극홍(劉克洪)이 시를 읊조리던 곳이다.
▸정송재(丁松齋) : 거창인 유극홍(劉克洪)을 기려서 세운 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