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는 유전으로 자는 원보요 호는 죽간이며 시호는 문양이다. 원래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한림학사와 병부상서를 지낸 뒤 서기1082년인 고려문종 36년에 우리나라에 건너왔다고 한다. 그는 9경과 백가서 및 천문과 지리에 정통했다 하며 조정에서 불러도 나가지 아니하고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다 한다. 3세에 이르러 웅열은 고려조에 벼슬이 숭록대부겸판전리로 아림군에 봉해졌고 그의 11세손 한우는 중조로 본래 이름은 이귀요 자는 천서며 호는 망운 또는 우사라 하였고 시는 충희이다. 서기1334년에 태어나서 공민왕조에 문과장원하였고 동19년에 대한으로 천자가 기우제관을 명하니 정성을 다하여 기우천제하였다. 지성감천으로 3일간 비가 내리니 왕이 크게 기뻐함 그의 이름은 한우라 사명하였고 벼슬은 통훈대부 병부상서를 역임하였으며 본조에 들어서는 자헌대부예조판서를 지냈고 서기1423년에 세상을 떠났다. 중조 충희공의 7세손 득상은 자가 자길이오 호가 우담으로 수직이 통정대부로 통정공 파조이다. 입안자 진서(鎭瑞)는 처음 이름이 진규였고 자는 구서요 호는 성암으로 파조 통정공의 10세손이다. 상계는 누대에 안의면에 세거하다가 서기1930년대에 후방으로 옮겨와서 현재까지 후방과 장기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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