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최씨는 처음 신라 고허대인소벌공으로 부터 시발한 자취가 이미 영묘하고 특이함이 있었고 문창후고운 선생이 출생함에 이르러 문장과 학술이 동방유학의 으뜸이 되었다. 서업이 이미 신라를 지나 고려에 이르러 좋은 운기를 타고 번갈아 흥기하여 이름난 벼슬과 통달한 선비가 풍부하고 무성하여 갈래가 나누워지고 파를 달리함에 따라 파조를 조상으로 삼아 문중 겨레의 종이 되니 그 형세가 그러한 것이다. 고려 말 조선 초에 병조판서 광정공 휘단이 파조이다. 파조의 21세손 휘명득은 자 명보 선략장군이었으며 그의 차자 세영 자 세흥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이 입안하다. 그의 자 휘 태휘(泰輝)는 자가 양중이며 호 양서 당으로 영조 무신난으로 인하여 안의현이 혁파 당시 9년에 걸쳐 복현토록 국가에 상소하고 천릿길을 왕래하며 진소하신 분이다. 복현 후 일등양무원종공 신록에 책하여 안의향교지에 등재되어 있다. 그의 후예들은 남산리 장기리 상천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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