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천면 강천리 마항마을 안에 있는 재실로 군자감 참봉 이여관을 기려서 그 후손들이 서기1930년 봄에 세웠다.
이여관은 합천인으로 서기1597년 정유재란 때 그의 형 봉사 이여옥과 더불어 황석산성에서 전공이 있었다.


역문
모원재 중건기
재실은 덕유 금원의 두산 사이에 있으니 이는 군자감 참봉 합천 이공 휘 여관이 건축한 바이다. 공이 서기1597년 정유재란을 당하여 형님 봉사공 여옥으로 더불어 황석산성에 같이 전공이 있으므로 난리가 평정한 후에 그 천석의 아름다운 경치를 사랑하여 고반을 잡고 심성을 기르다가 수명을 마치매 당시에서 한말로 기덕(덕망이 높은 노인)이라 칭하였는데 지금에 공이 돌아가신지 이미 300여년이 되니 그 중간에 재실은 유허가 도니지도 또한 오래이다. 서기1930년 봄 2월에 그 자손들이 재물을 모으고 힘을 합하여 옛 터에 나가서 두어 칸 집을 건축하는데 성의가 이미 부지런하였고 돈독함에도 법칙이 있으므로 시월도 안되어 공사가 마치게 되니 이에서 연운죽수와 산풍수월이 의의하게 옛 경치와 같아서 몇 배나 빛나는데 자손들이 여기에 회합을 같이하고 아침저녁으로 화수의 즐거움이 융화되고 봄가을로 제사를 올리는 예절에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추원하는 의리를 이룸인저 금년 봄에 내가 화림의 강천선조 재실에서 병을 조리하고 있었는데 공의 12세손 문기 동기가 와서 세덕을 강의하고 또 나를 인도하여 이 재실에 이르러 술이 장차 취할 무렵에 2군이 재실에 아직까지 기문이 없으니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면서 이르기를 흥왕하고 황폐됨은 때이고 현달하고 어둔 자는 이치이니 이 재실이 일찍이 유허가 되어 빈산 임목사이에 쓸쓸하였는데 지금 우뚝하게 새로 건립되어 밝은 창과 문채나는 책상에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가히 황폐했던 자가 흥왕하고 어둔 자가 현달함이다. 그러나 자손이 된 자도 그 선조의 업적을 생각하고 능히 몸과 마음을 닦아서 오늘날에 험난한 풍파를 잘 걷는다면 어찌 이 재실을 보존하고 서로 수호하여 후세에 길이 전하지 않으리오. 이것이 제군들이 마땅히 가일층 생각할 자인저 이것으로 기문을 만들었다. 서기1939년 황화절에 종생 봉래는 기문을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