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 마을 밑 여시골에 있는 추모재 뜰에 있다. 숭정대부 지중추부사 안동인 권락철을 기리는 비로 서기1977년에 그의 5세손 권대현이 건립하였다.
역문 숭정대부 지중추부사 권공 기적비 지난옛날 안음 고을에서 크게 수를 누려 높은 벼슬에 오른 자가 있었으니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언 백수십년이라. 이제 그의 오세 손 대현이 힘을 다하여 재실 한 채를 세워서 세천 일제하고 숙박하는 곳으로 삼았다. 도한 비석 하나를 울안에 세워 그 사적을 기록하려 하면서 나에게 찾아와 비문을 청하므로 두렵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생각해보니 내가 알기에는 재실 안에 선 비석을 아직 본적이 없지만 선대에서 가히 기록할만한 사적이 있다면 이를 비석에 새겨서 선조를 기리고 섬기는 것이 위선의 길이요 보본의 길임이 틀림없으므로 이에 안찰하여 서술한다. 공의 휘는 낙철이며 자는 평길 인데 서기 1751년에 출생하였으니 기골이 장대하고 지조가 굳세었으며 성품이 묵중하였다. 어릴 때는 가정교육에 충실하였고 자라서는 문예에 통달하였으나 과거에는 뜻이 없었고 효우와 제가 그리고 농잠에서 항상 즐거움을 찾았다. 크게 수명을 누렸기에 나라에서 우로의 성전으로 숭정대부 지중추부사의 직함을 받았고 그 후 3월23일에 세상을 떠났으니 서기 1884년이고 향년은 94세이다. 북상면 염정동 간좌에 안장하였다. 우리 권씨의 본관은 안동인데 고려태사 휘행이 시조가 되시며 국조에 들어와서는 감정을 지낸 휘 집덕께서 비로소 삼가에 이사와 살았고 삼괴당 선생 휘 시민에 이르러서는 또 안음으로 이사하여 살았는데 학행이 장하였으므로 학림서원에 배향되었다. 그 어른의 증손의 휘가 건이고 호가 노천인데 동계 정선생에 추숭을 받았으며 유집이 있으니 공에게 7세조가 된다. 증조의 휘는 점이고 할아버지의 휘는 이경이며 호는 명계재인데 역시 유집이 있다. 아버지의 휘는 정으로 다 같이 격식에 의거하여 증직을 받았으며 팔계 정완의 외조이다. 배위는 정경부인 경주이씨 성춘의 따님으로 두 자제를 낳았으니 치복 규복이다. 치복의 아들은 유형이고 규복의 아들은 기형 익형 석형 용형이다. 대현은 기형의 증손이 된다. 아! 공이 시례의 가풍을 이어왔고 또 태평성대에 장수와 강녕의 복록을 누렸으니 하늘의 은영이 어찌 아니랴. 거룩한 행적과 보배로운 글들이 한없이 많으련만 빈번하였던 이사로 인하여 오직 행장 및 비갈을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래 전부터 전해오던 문적까지 아울러 유실하였으니 세월은 멀지 아니하였으나 기송의 고증이 없어 자손의 아프고 한스러운 마음 금할 수 없도다. 분명치 못한 것을 어찌 한마디의 말인들 첨가 할 수 있으랴. 다만 족보주각에 있는 대로 수록해서 비석에 새겨 바라보면서 사모하는 성의에 부치도록 하였다. 병진년 소서절에 안동 권옥현 짓고 아림 신유성이 썼으며 정사년 청명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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