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설화
6. 정희량 이야기 <05. 역사 : 무신란 참조>
정희량, 본명은 준유, 안음의 초계정씨 진사 중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곱게 자랐는데, 어려서부터 의젓하고 비범한 데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네댓 살 나던 어느 날 안음 고현의 진산인 금원산에 불이 나서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서서 산불 구경을 하고 있는데, 부모의 등에 업혀서 대문밖에 나온 희량이 “금원산에 불이 붙었으니 하늘이 솥이로구나!”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또 대여섯 살 때 서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큰 구렁이가 나타나자 다른 아이들은 놀라서 소리치며 피하는데 깨어난 희량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히 앉아서 구렁이가 지나가도록 보고 있었다고 한다. 희량은 자랄수록 재주도 있어서 학문도 높아졌고, 건장한 몸에 힘도 세고 날쌔며 모든 것에 뛰어난 그야말로 신언서판이 분명한 총각으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곳에서 혼담이 들어왔는데 그 가운데서도 안동 땅 이씨 명문에서 혼기가 된 딸을 둔 이가 선을 보러 안음에 온 일이 있었다. 희량의 부친인 정진사와 안동서 온 이씨 사이에 인사가 끝나고 주안상이 나왔으며, 이어서 용모도 훤칠한 희량이 사랑에 들어와 인사를 올렸다. 과연 소문대로 잘 생긴 신랑감이었다. 그리고 몇 마디 얘길 나누어 보고는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씨는 비록 먼 길을 왔어도 훌륭한 사윗감을 만나게 되어 속으로 매우 흡족하게 여기고 있었다. 밤에 희량이 다시 사랑에 나와서 편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 뒷 모습을 본 순간 이씨는 정신이 아찔해지고 자기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희량의 뒷모습에 분명한 역모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낙심도 되고 걱정도 되어 그날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이튿날 아침상을 물린 이씨는 정진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정진사 뭐라고 사죄해야 되겠습니까.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사실인즉 제 여식은 불민하기 이를 데 없으니 저 장부의 배필로서는 천부당만부당함을 알았습니다. 연분이 없는 것으로 여겨 주시길 빕니다.”하는 것이다. 정진사는 “아니, 무슨 말씀을…….” 너무나 뜻밖의 말에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 때만 해도 혼담이 있어서 선을 봤다면 정혼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또 안동서 안음까지의 길이 얼마나 멀단 말인가. 정진사는 “사양도 지나치면 비례인데 어찌 그렇게까지……”하고 말을 이으니 이씨는 “아닙니다. 저는 댁의 자제가 평범한 총각일 거라 여기고 왔는데 대면해 보니 정말로 예측할 수 없는 큰 재목입니다. 그런데 제 여아는 정말로 불출이며 등신입니다. 그러니 자제의 짝이 될 수 없음을 안 다음에야 지금 사죄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상책이라 여겨서 이러하는 것입니다. 제발 통촉하셔서 이 혼담이 없었던 것으로 해 주십시오”하고 정중히 그것도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오래 한 끝에 서로 정의를 상하지 않기로 하고 쓸쓸히 헤어졌다. 뒷날 과연 희량은 무신난을 일으켰고, 안동 유림의 동조를 구하러 갔으나 동의를 얻지 못하였으며, 거사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역모상을 알아본 높은 관상술을 지녔고, 혼담도 재치있게 거둬드린 이씨의 이야기가 지금도 안동지방에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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