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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유현(19명)
신복진(慎復振)
선생의 자는 신지 호는 야천으로 황산 신씨 사현중의 한사람이며 요수권의 넷째 아들로 서기1536년에 출생 하였다. 청숙한 기품은 학담의 물과 같았고 빼어난 자태는 정기찬 금원산과 같았으며 인륜을 중시하였고, 지조가 강직하여 적극적으로 실행함을 근본 삼았다. 외숙 첨모당이 이르기를 양자증을 비유하며 수승대의 주인이 될 것이라 하였고, 동계 정문간공이 제주배지에서 선생의 부음을 듣고 시를 지어 가로되 “요수정과 학의 꿈이 시들었으니 선생의 구역이 어디 뫼인데 홀로 방황하는가. 효도와 우애는 인륜으로 덕의 연원에 틀림없으리라. 당당한 말씀은 만인에 공명하고 강직한 위풍에는 만인이 놀라더라. 늙은 선비 말 들으면 밤이 길다하는데 내 고향은 장차 어떻게 되리”하였고, 도암 문정공은 그의 묘비에서 “넓은 학문과 돈독한 의지 분수에 맞는 수신은 그의 천성이 온전함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선생은 평생을 강직한 성품에 오직 효제지의 정성이 탁월하였고 특히 중형인 청송당과의 형제지간 우애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서기1619년12월15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이 84세라 화천사에 봉향하였다. 선생을 기리는 유적비가 구연서원경내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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