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모든 양씨의 시조는 탐라 설화의 삼신인 중의 한사람인 양을 나다. 제주 삼성인 양 고 부씨의 시조인 삼신인은 맏이가 양을나 둘째가 고을나 셋째가 부을나다. 양씨의 원래 양자를 성 자로 써다가 신라 때 양으로 개성했다고 전한다. 양을 나의 후손인 양탕이 신라 진흥왕20년인 서기559년 광순사로 신라를 예방하니 진흥왕은 많은 상과 작록을 내리고 양이라 성을 고치게 했다. 양순은 통일신라 신문왕5년 서기685년 신라 국학에 수학하여 장원급제하고 한라군 으로 봉해져 세습함으로써 제주를 득관 하고 제주양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남원으로 분적하게 된 시기는 신라경덕왕 16년인 서기757년이다. 양우량이 왕실에 큰 공훈을 세워 남원부백에 봉해져 관적을 남원으로 했다. 남원관은 서기996년 병부랑공 양능양을 중시조로 하는 병부랑 공파와 서기1270년에 용성부원군 양주운을 중시조로 하는 용성군파의 양파가 있다. 용성부원군의 12세손 희는 1540년에 사마시에 장원급제하고 1546년에 문과에 올라 이조참판을 지내고 1580년에 동지진하사로 명나라 조회에 참예하고 돌아오는 도중 옥하 관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자는 구이이며 호가 구졸 암이다. 구졸암의 10대손 호규(灝圭)가 1892년에 고제 온곡에서 이곳 금곡으로 입향하여 후손이 금곡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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