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천면 강천리 175번지에 이공 신도비와 나란히 서 있으며 1990년에 건립하였다. 참지정사는 합천인으로 이양진이다.
역문 고려 참지정사 이공 유적비 공의 휘는 양진이요 성은 이씨요 관향은 합천이니 내가 일찍이 그의 족보를 살펴보니 벼슬은 고려 때 참지정사더라 시조는 신라좌평원훈 포암선생으로 휘가 알평이요 족보상 시조는 신라 말의 망복대신 강양군 문충공 휘가 개이나 두 선조가 함께 경주 옥강묘 합천중동서원에 향사하니 이가 동방의 가장 오래된 겨레더라. 이 뒤로 어진 정승과 어진 재상이 대를 이어났으니 문하평장사 천우위 대장군 휘 인영과 남장 휘 돈과 시랑 휘 익서와 은청광록대부 상서좌복야 한림승지 휘 존순과 첨의평리 찬성사 장숙공 휘 덕손은 모두 증조 이상으로 들어난 선조라 대부의 휘는 설이나 삼중대광 첨의찬성사요 아버지 휘는 원분이니 중랑장이요 어머니의 성은 언양 김씨이니 상호군 휘 백유의 따님이라 이남을 두시니 맏이는 양실이니 참지정사요 다음이 곧 공이라 공이 이남을 두시니 직은 참판이요 규는 예의판서라 직은 참판 생과 한림 성을 길렀고 규는 성간과 한림 수장을 두시고 한림이 판도판서 문질공 강천선생 예를 두시니 충효절의와 도학문장이 대대로 종사가 됨이라 향산 유영구가 신도비문을 찬 하였고 둘째 아들 려계 강복 충신 병조참판 달암공 원달과 함께 안의 금계서원에 향사하였고 뒤에 동군 대덕사에 제사지내니라. 현손 이하는 너무 많아 다 기록치 않는다. 거룩한 집안에 태어나시어 맏형과 함께 요직에서 왕정에 참여하여 또 파조가 되어 자손이 수천호가 넘으니 그 업적 오죽 많으랴 마는 유적과 문헌이 간수 못되어 증거 삼을 것 하나 없으며 생졸과 배위의 묘소를 실전하고 오래도록 분향 못 드려 애석함을 금할 수 없더니 후손 동길이 서울서 가산을 이루어 단독 부담으로 강천재 뒤에 공의 제단비를 세우고 또 자본을 드려 재 바깥 신도비 옆에 공의 유적비를 건립할 때 후손 우기가 또 비 세울 부지를 헌성 하더라. 문중의 선비 두원을 보내어 나에게 글을 청함에 나는 두 분의 숭조애족지심에 감복하여 사양치 못하고 기술하여 가로되 오직 우리공이 해동의 갑족이라 포암선조가 건국의 원훈으로 강양에서 관향을 나누니 공이 조정 등관하여 정책에 참지하다. 병난을 여러 번 겪으니 거룩한 업적들 잿더미에 잃었도다. 착한 후손들 정성을 다하여 비를 세우니 효는 가문을 빛내고 충은 대대로 덕이 되었느니라. 유적은 실전이 되어도 모든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으니 내 여러 말 아니하고 후손에 전함이라. 세경오팔월십삼일 방 후손 성령이 삼가 간추리고 동래 정문갑은 삼가 쓰다. 단기4323년5월 단오절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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