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동네 설립계획의 시발
꽃동네는 우리나라 남부권(경남.북.부산.대구)에 제3의 꽃동네를 설립하여 노인 및 장애인 요양시설을 설립할 목적으로 추진되었음
○ 위치: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61-1번지 한수리골
○ 사업규모
․ 총 부 지 : 660,095㎡(19,679평)
․ 토지이용 : 113,984㎡
․ 시 설 : 노인요양 시설 9,920㎡(1동)
장애인 요양시설 9,920㎡(1동)
기타 부대시설 13,225㎡(진료소, 강당, 관리소, 숙소등)
○ 사업신청자
충북 청주시 북문로 3가 59번지
(재) 청주교구 천주교회 이사장 정 진 석
(꽃동네 회장 오 웅 진)
○ 투자계획 : 25,000,000천원
- 사회복지 기금 22,750,000천원(90%)
- 자체자금 2,250,000천원(10%)
○ 토지소유자인 경남지사의 도유림사용동의서 발급
‘95.1.23 면적 665,000㎡
○ 청주교구 천주교회 이사장의(정진석)공공시설(보건환경 시설)입지 승인 신청서를 거창군에 제출 ‘95.2.13
□ 꽃동네 유치와 면민의 대응
경남지사로부터 도유림 사용동의를 받아 꽃동네 설립 장소를 결정한 천주교 청주교구 이사장(김진석. 꽃동네 회장 오웅진)은 ‘95.2.13 거창군에 공공시설입지승인 신청서를 제출하므로 서 꽃동네 설립계획이 가시화되기 시작함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한 위천면 번영회 (회장 愼寅範)주관으로 사업설명회를 갖고 면민의 여론을 수렴한 결과, 수려한 자연경관 보존생활용수원 확보, 지역정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감안 지역주민은 절대 유치 반대한다는 주민의견을 결집하고 결사반대 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발족시켰다.
○ 초대 위원장 신 인 범(愼 仁 範)
○ 2대 위원장 강 신 봉 (姜 信 蜂)
․이장단, 새마을지도자, 부녀회, 의용소방대, 자생단체 뜻을 같이하는 면민 참여
․후원은 위천 번영회에서 맡음
□ 꽃동네 위치 선정
․오웅진 신부 : 하느님의 계시
․도 산림과장 : 도에서는 도유림이 위천면에 있다는 것은 알지만 한수리골짝이 어디 있는 지도 모른다. 단 이 골짝을 잘 아는 지방인이 알려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지방민의 의심 : 지역주민 중 지사와 말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했을 것으로 의심이 시작 되었다.
□ 꽃동네 유치의 찬반
․거창군에서는 관선군수 재임 시 주민이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민선군수가 취임한 후 유치 쪽으로 계획을 세워 주민설득에 나섰다. (이유로 인구가 늘어서 좋고 많은 예산이 거창에 투자되어 좋다는 이론이다.)
․군의회는 일언무언이다.
․정종기 도의원 : 면민의 정서를 수렴하여 유치반대 주장을 강하게 하여 유종 의미를 거두었다.
․이강두 국회의원 : 주민이 반대하면 어렵다.
□ 꽃동네 반대 투쟁
․군청에서는 반대이유가 육하원칙에 맞아야 하니 음성꽃동네를 견학한 후 분석하자.
․지방민은 음성은 음성이고 위천은 위천이니 갈 필요도 없고 절대 유치는 안된다.
․군 의회 : 위천군의원에 교체로 철회 쪽으로 뜻이 모아져 꽃동네 반대 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거창군민 37,311명의 반대서명을 받아 청와대를 비롯한 각계 요로에 송부하였다.
․군청에서는 위천주민의 뜻을 수용하여 철회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좋은 매듭을 이루었다.
․이강두 국회의원은 수시로 래면하여 위천면민을 위로하고 격려하였으며 중앙에는 본인이 책임지고 밀고 나가겠다고 약속하였다.
․거창경찰서 : 수없이 많이 있었던 소요에도 불구하고 서장이 직접 나서 쌍방을 이해시켜서 원활을 기하였다.
․언론 : 상황이 있을 때마다 직시한 언론으로 올바른 평을 해 주었고 거창신문의 광고로 인한 오해도 상호 이해하는 조건이 되어 원한만 끝을 맡아 주었다.
․초중등학교 등교 거부 : 일시 등교거부를 했으나 위천면 노인회 측의 설득으로 등교거부를 해제했다.
□ 꽃동네 철회와 매듭
․거창군에는 접수된 꽃동네 설립신청서를 제출자에게 반송하였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군수의 힘으로 종말을 보았다.
․김상원 김칠환 정종기 도의원은 위천주민의 뜻을 도의회 위천주민의 뜻을 도의회에 상정하고 도지사를 직접 방문하는 등 꾸준한 노력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군 의회는 꽃동네 유치반대운동을 전 군민에게 확산시켜 원만한 끝을 맺었다.
․도지사는 주민의 뜻을 잘 받아주어서 최종결론을 내어 주었다. 이후에는 또 다시 유사한 사례가 없어야 하겠다.
□ 꽃동네를 물리친 면민의 저력
꽃동네 문제는 보통 발생한 사안이 아니다.
기미년 3.1독립 운동 때는 우리들의 선현이 목숨을 바쳐가며 빼앗긴 강토를 되찾기 위하여 총칼 앞에서 맨몸으로 독립투쟁을 한 사실이 역사에 남아있다.
오늘날 유치하려는 꽃동네는 거창주민의 생존권을 약탈하려는 음모를 우리는 일직예견하고 생존권 보존에 피나는 투쟁이 3년여를 끌어 왔다. 그동안의 몸싸움. 설득. 방어 등 노력은 우리 거창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 꽃동네 반대투쟁위원회 해체
98. 4.27 꽃동네 반대투쟁위원회 해체씩 거행
감사패전달 도의원 정종기, 아림신문사장 윤구, 김영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