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월마을 남쪽 산록인 모동리 352번지인 약암정 앞에 있는 약암 신재서를 기리는 비이다. 김해 김현구가 비문을 지었고 1993년에 후손들이 세웠다.
역문 약암 신선생 유허비 망월의 산주령이 모동의 웅진을 이루었으니 그 기슭에 한마을이 있어 가로되 무월이라 하니라. 좌우의 천석이 맑고 아름다우며 적은 뫼 뿌리가 묘하게 뻗혔고 앞에는 기름진 들이 있어 오곡이 풍성하더라. 약암선생 신공이 이곳에 살면서 옥 같이 아름다운 망월의 뫼 뿌리를 매우 좋아하여 두어 칸 되는 작은 집을 지으니 조용하고 샘이 맑아 석전에 약초 심는 뜻으로 약암이라 하였다. 창가에 책상 놓고 글 읽으며 담도로 벗을 맞이하고 화분과 어항에 물을 맞추어 약되는 이치를 알아보며 이성의 진실을 길러 얻고 늙도록 강학하니 세상 사람들이 군자가 숨어 사는 동네라 하더라. 뒤에 작은 정자 하나를 지어 약암정이라 하고 양쪽에 손수 송죽을 심어 가꾸고 어진이 들과 더불어 학문을 강론하고 글 읊음을 낙으로 삼았는데 한말 국치 후에 재실은 없어지고 남은 것이 작은 정자와 두어 그루 소나무뿐임에 이곳을 지나는 자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공의 후손들이 일러 가로되 이곳은 우리선조가 일찍이 아끼고 즐기던 곳이라 어찌 무심 하리오. 재실이 있었던 곳에 비를 세우고자 현손 학범이 종중의 뜻을 가지고 나에게 현각 할 글을 청하거늘 불민한 내가 어찌 이를 감당 하리오 하며 사양하였으나 평소 공을 사모하였던 터라 굳이 사양치 못하고 제현의 문헌을 근거하니 공의 휘는 재서요 호가 약암이라 거창신씨로 계출하니 시조의 휘가 수로 시가 공헌인데 그의 후손으로 도덕이 장한요수권이 9대조요 황고 수이가 고조이다. 증조 휘 인명은 벼슬이 지평에 이르렀고 조의 휘는 성존이다. 고의 휘는 필성으로 성품은 엄하였으나 마음은 온화하였다. 비는 전의이씨로 방송의 따님이다. 공을 조선순조 원년 신유에 낳으니 성품이 청수하고 어릴 때부터 글을 좋아하였으며 조용한 마음가짐과 삼가고 돈독하였음이 남달랐다. 가훈에 따라 의복부터 정제하였고 평소 말씀이 옳지 아니한 부귀는 뜬 구름과 같다 하였으며 항상 스스로를 살피면서 경계하였고 평생을 늦도록 임천에 묻혀 순리에 따랐으며 위엄이 있어 그의 엄연함을 우러러 바라봄이 산언덕과 같았고 외모는 엄격하였으나 마음만은 항상 온화하였으며 어버이 봉양에 후회가 없었다. 가세가 어려워도 분수를 지켜 즐거움을 변치 아니하였고 스스로를 속이지 아니하였으니 정대한 정신으로 호기 효연하였다. 후학들에 유지를 써 밝히니 방가위지 아름다운 옥이요 변함없는 산이었다. 공은 세상이 꼭 필요한 인재였으나 안타깝게도 숲속에서 한평생을 마쳤으니 아쉬울 뿐 오직 선생의 사모함이 완연하다. 축주로서 갖추어짐이 빠짐없으니 오래도록 늦추어서는 아니 되나 세대 도덕의 침체가 한스럽다. 모두들 가까이서 뜻을 같이하여 자나 깨나 이 생각 어찌 아니하랴. 이제 비를 세워 선생의 유허를 표하였으니 지나는 이들 무심치 않으리라. 서기1993년 계유 6월 일 후학 김해 김현구 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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