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1351년(고려충정왕3년)10월에 원에 가있던 강능대군 기를 왕으로 하고 이 제현(李齊賢)을 섭정승으로 삼았으며 12월에 왕이 원으로부터 돌아와 즉위하니 고려 공민왕이다. 공민왕으로 즉위한 강능대군 기는 이보다 앞서 서기1349년인 충정왕 1년10월에 원나라에서 위왕의 딸 노국공주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이 정공(理政公)은 원나라의 중랑장으로 서문 기(西門記)이다. 중랑장이요 이 정공(理政公)인 서문기는 원나라 위왕의 딸이며 공민왕비인 노국대장공주를 호종하여 와서 안음군에 진봉되니 관향을 안음(安陰)으로 하고 이곳에 옮아 살게 되었고 서문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아들 존(尊)은 통정대부종성부사를 지냈고 손자 사(師)는 호조정랑을 증손 식(湜)은 좌익원종공신행 함양군수였고 현손 질(秩)은 부정검상사인 등 누대가 벼슬하면서 호화스럽게 살았는데 질(秩)의 아들 3형제가 금산(錦山) 장수(長水) 임피(臨陂)등지로 옮겨 갔다고 한다. 서쪽 현성산(玄城山)에는 서문가 바위(서문암: 상혈암)가 있고 산록에 시조의 단묘가 있다. 화림지 상혈암 조에 의하면 “금원산 동쪽 기슭에 있는 바위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서문씨가 이 암혈에서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고 안의읍지 성씨 편에 의하면 “서문 기(西門記)는 대대로 중국 하남 땅에 살았는데 원나라 순제 때에 이르러 시신중랑장 겸 이정(理政)으로 대장공주를 호종하여 우리나라에 왔으므로 고려공민왕이 안음군에 봉하였다. 이조 태조가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아니하고 금원산(金猿山)중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그 후손이 전라도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이르기 까지 서문씨의 외손 외외손들이 혈연으로 안음에 옮겨 살게 되었는데 서문씨 문에 출입한 합천이씨(陜川李氏) 문질 공 이예(李芮)는 판서를 지냈고 그 아들 3형제 중 둘째 아들인 참판 이 원달(李元達)의 사위가 된 거창인(居昌人) 감찰 유환(劉懽)은 초계정씨 입향조인 생원 정제안(鄭齊安)을 사위 삼아 감음에 같이 살게 되었는데 거창 신씨의 입향조인 승훈랑 신 우맹(愼友孟)이 정제안(鄭齊安)의 손자인 부사 정옥형(鄭玉衡)의 사위가 되어 전라도 영암에서 옮겨와 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처향(妻鄕)으로 옮아 산 합천이씨 거창 유씨(居昌劉氏) 초계정씨(草溪鄭氏) 거창신씨(居昌愼氏) 등은 혈연으로 얽히어 화목하게 살면서 대대로 벼슬하고 명성을 떨치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들의 외척을 더듬어 올라가면 멀리 고려 말의 서문씨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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