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은 국가지정 보물이다.
지정번호 : 국가지정 보물 제530호
지 정 일 : 1971.07.07
시 대 : 고려
소 재 지 : 위천면 상천리 산6번지의2
금원산 자연휴양림 위쪽의 거대한 천연동굴에 적립암벽을 얇게 파고 부조(浮彫)한 마애불로서 침잠한 얼굴 표정과 특이한 대좌 형식 등에서 토속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불상이다.
중앙의 본존불(本尊佛)은 소발(素髮)의 머리위에 육계(肉髻)가 큼직하다. 넓적한 얼굴은 작은 눈과 입 세모꼴의 뭉텅한 코 납작하고 긴 귀 등은 역시 토속적이다. 밋밋한 어깨에 신체의 볼륨은 약화되었고 통견(通肩)의 대의(大衣)는 평탄적인 간결한 옷 주름이 중첩되어 있다. 대의 하단은 짧게 표현되어 양 다리가 길게 노출되었다. 양 발은 보편적인 정면관(正面觀)의 불신과는 달리 발꿈치를 서로 맞댄 측면관(側面觀)이어서 부자연스럽다. 양손은 가슴 앞에서 모아 엄지와 인지를 맞댄 상품중생인(上品衆生忍)을 맺고 있어 아미타불로 추정된다. 대좌의 윗면에는 5엽의 앙련(仰蓮)을 내부에서 간엽(間葉)이 3엽의 복련(覆蓮)을 표현하였다. 광배(光背)는 융기선으로 표현한 무문(無紋)의 보주형(寶珠形)이다.
좌우 협시보살은 본존불과 조각기법이 비슷하지만 양 옆으로 고사리처럼 번잡하게 뻗은 천의(天衣)자락과 영락 장식 등 장식성이 강하다. 특히 한손으로 천의 자락을 잡은 자세는 삼국시대 보살상을 연상시키지만 그 보다는 훨씬 도식화되었다. 본존불에 비해 여성적인 얼굴에 머리에는 화려한 화관(花冠)을 썼으며 수발(垂髮)은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광배는 원형 두 광배이며 대좌는 사실적인 연꽃으로 구성되었다.
좌협시 보살 옆에 세로 88㎝, 가로 77㎝, 깊이 약2㎝ 정도로 암벽을 파낸 다음 이 불상의 조상기(造像記)를 해서체로 1행26자 총21행에 540여 글자를 새겼으나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곤란하다. 고려 16대 왕인 예종(1106~1122在位)이 그의 어머니 왕생극락을 위해 효심으로 새겼다고 한다.
종전에는 다만 고려초기작품으로만 추정 하였는데 1989년에 동국대학교 고고미술 사학과의 학술조사팀에 의하여 비로소 서기 1111년 즉 고려 예종 6년인 천경원년(天慶元年)의 작품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면 동국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 사학과 김길웅(金吉雄) 조교수의 “가섭사지 마애삼존불상에 대한 고찰”중의 「Ⅱ 조사경위 및 조상기」 초록을 참고로 부기한다.
<가섭암지 조상기>
1989년 봄 본교 신라문화연구소에서 학술조사의 일환으로 경남 합천지역을 대상으로 학술조사를 실시하여 매안리 고비(梅岸里古碑)를 찾아내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 이 일환으로 이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경남 거창에 고비가 있다는 제보에 의하여 김상현(金相鉉) 교수와 국사과 학생들이 현지를 답사한 결과 명문석(名文石)이 있었는데 마모가 심하여 학술조사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후일을 기약하고 돌아오려는 중 세계일보 거창지부장과 현지 주민들이 경남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천연동굴 직립암벽에 마애삼존불이 있는데 그 바로 옆에 명문(銘文)이 있다는 제보에 의하여 곧바로 야행(夜行)으로 그곳에 이르러 확인한 결과 마애삼존불의 우측에 깊이 2㎝ 정도로 암면을 파낸 다음 해서체로 1행 12자, 총 21행의 명문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1989년 6월 15일 조사팀이 현장에 도착하여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마애불상의 조각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1971년도에 보물 제530호로 지정까지 된 이 불상에 대한 조상기(造像記)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까 하는 의아심이 들었다.
현재까지 고려시대 마애불상의 조상기가 두 곳 밖에 알려지고 있지 않아서 이 가섭사지 마애삼존불상의 조상기는 더욱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하고 이 조상기에 기대하는 바가 상당히 컸다. 그래서 탁본(에 의하여 판독을 시도하였으나 며칠 전에 비가 와서 암면에 물이 흐르기 때문에 정탁(正拓)을 할 수가 없었다. 부득이 유탁 속탁(油拓速拓)을 하였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할 수없이 하산을 한 다음 며칠 동안 계속하여 날씨가 좋아 다시 현장에 가서 정탁을 하여 어느 정도 판독을 할 수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곳은 산중의 천연동굴로서 하절기에도 여기에 들어가면 서늘할 정도로 자연히 습기가 생길뿐만 아니라 비가 오면 수일동안 물기가 흐르는 곳이기 때문에 맑은 날이 계속되지 않는 한 물기로 인하여 탁본하기 매우 곤란하다. 따라서 이번 조사에서 탁본 대상면적에 비하여 너무 수고로움이 많았다.

이 조상기는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마모에 의하여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이나 이 명문은 전각가 안광석(安光碩)선생의 판독에 의한 것이다.

<진재 김윤겸의 가섭암터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