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리 21번지인 정안동 잣나무 날 끝에 있다. 창녕인 병조판서 조중인의 신도비로 후손 영래가 글을 지었고 은진 임필희가 글씨를 쓰시고 후손 정열이 전서하였고 서기1921년 신유에 후손들이 세웠다.
역문 판서공 조중인 신도비 슬프다. 안의 정안동 잣나무 날 축자의 무덤은 우리선조 판서부군의 묘소이다. 부군께서 정덕병인년(서기1506년)까지 사셨으니 수는 오십 육세이다. 그해 삼월구일 세상을 버리니 지금 신유년으로 사백 십 육년이 되었다. 비문이 오래되어 글자가 희미하여 알아보기 어렵기로 다시 만들어 그 내력을 기술하오니 부군의 휘는 중인이요 자는 백연인데 무오사화 때 한성판윤 공을 모시고 조용하게 안의로 물러와 산수간에서 수양하다가 세상을 버렸으니 슬프다. 군자의 출처대절을 하나를 보면 그 세 가지를 알 수 있거늘 하물며 아버지께서 하신 일을 그 아들이 계술하니 그 아름다움은 세상에 태어나신 영광스러운 혼령에 반드시 기록할 것이 많을 것이다. 지금 자상하게 할 수 없어 한스러운 일이나 그러나 하서 김선생께서 을사사화 때 조용하게 물러난 것을 우암 송선생께서 그 비문을 지을 때 우리나라 큰 선비요 명현들이 수선(임금이 물러남)할 즈음에 몸을 바쳐 사직을 보호하고 사림을 구원하다가 화를 면하지 못하였거늘 선생께서는 세상을 바로 바라보아 허물없이 지냈으니 백세에 사표가 된다 해도 옳을 것이리라. 그 근원을 살펴 보건데 도학에 근본 하였도다. 흔히 절의로서 선생을 논평함은 선생의 참뜻을 옳게 모른다 할지니라. 우암선생으로 하여금 선생의 비문을 짓게 하였다면 하서 선생의 비문과 같지 아니하리오. 조씨가 창녕으로 족보 한 것이 신라 태사 휘 계룡인바 오대 째에 시중벼슬을 하신 휘 흠께서는 고려태조가 여러 번 불러도 이를 취하지 아니하였으나 아들 대락승 휘 겸은 고려태조의 사위가 되었으며 이후 팔대 평장사로 집안이 융성하였도다. 이조에 들어 참판 휘 수익이 계셨고 아들 휘 문택은 이조 판서로 단종손위 시에 거창으로 은거하셨으니 시호는 충익이 시니라. 병조판서 휘 저는 단종을 사모하는 마음 간절하여 항상 영월을 바라보며 세월을 보냈으므로 스스로 망월재라 하셨도다. 한성판윤 휘 세신은 정일두와 김한헌당 두 선생이 영남을 지날 때 찾아와 시를 지어 화답하였으니 옛날 호 담암이 조충간과 이참정을 찾아가서 시 읊고 놀던 일과 같다 하겠느니라. 휘 수익은 부군의 고조며 휘 문택은 증조가 되시고 휘 저는 할아버지가 되시며 휘 세신이 아버지시고 어머니는 벽진이씨로 현령 덕손이 외조가 되시니라. 아버지께서 아들 다섯을 두셨으니 부군이 큰 아들이시다. 부군께서는 전주최씨 군수 여녕의 따님에 취처하니 묘는 부군 지묘의 뒤에 있느니라. 큰 아들은 집의의 벼슬을 증직 받았는데 휘는 정이요 둘째 아들은 좌승지를 증직 받은 휘 우이다. 집의의 아들 승노는 학행으로 추천되어 훈도를 제수하였고 그 아들 죽헌 휘 숙은 문과에 급제하여 응교로서 후에 회양부사를 지냈으며 하서문인으로 서거 후에는 학림서원에 봉향되었다. 죽헌선생의 큰 아들 휘 개우는 통정이요 둘째는 휘 원우로 첨추인데 남명선생에게 수학하였고 휘 개우의 아들 휘 경연은 현감이요 휘 원우의 큰 아들 동곡 휘 경윤과 둘째 경홍은 각재 하항에게 배웠으며 휘 경연의 아들 휘 곤수는 군수요 찰방 휘 익휘는 휘 곤수의 아들이다. 선무랑 휘 경이 명덕재 휘 창과 더불어 문장과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으니 선무랑 휘 경윤의 아들이요 명덕재는 휘 경홍의 맏아들이고 도사 휘 헌은 둘째 아들이다. 부군의 둘째 아들 승지공의 아들은 휘가 대동인데 학행으로 참봉을 제수하였으나 이를 사양하였고 그의 현손 읍취현 휘 계철이 망주대를 지으니 동춘 송문정공이 글을 크게 써서 일부춘추양세구원이라 찬미하였다. 읍취헌의 셋째아들 만화정 휘 차빈은 인현왕후가 학대받아 폐위를 당하매 북쪽을 향하여 매일 통곡하더니 왕후께서 복위하신 후에 천을 받았으며 이분의 증조가 휘 경붕이다. 이밖에도 기록할 것이 많으나 이만 생략하노라. 슬프다. 아름답다. 신령스러운 지조와 단술 샘이 어찌 뿌리와 근원이 없으리오. 그 할아버지를 사모하고 덕을 닦지 아니한 자는 부조의 묘소에 오를 수 없으리니 그 묘소에 영이 있다면 내 어찌 후손이 아니리오. 지은 글이 속임 없음을 여러 일가에게 맹세하고 이에 두 손 모아 백세후에 읽어볼 사람을 기다리노라. 만화공 칠세손 영래 글을 짓고 은진 임필희 글씨 썼으며 찰방공 팔세손 정열 전자를 썼으니 그해 오월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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