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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유현(19명)
조학(趙謔)
선생의 선대는 용진에서 살았으나 중조에 와서 이조개국공훈으로 관향이 한양이다. 자는 근 여며 호는 수오재로 서기1488년8월24일에 한양재동본제에서 출생하였고 삼종숙 정암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니 간결하고 해박하였다. 성품은 온순하였고, 근신하였으며 강직하였고 명랑하였다. 특히 효성이 지극하여 종 신 모 삼자로 효를 근본 하였으며 경서를 읽을 때에 부모를 섬기는 대목에서 증자의 사친하는 태도도 오히려 가하다는 구절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다가 말하기를 증자 효성을 오히려 가하다고 할진데 우리들은 증자의 효성에는 비할 바가 하늘과 땅 같은지라 하면서 봉양과 돈독함이 더욱 간절하였다. 평생을 사친의 직분과 독서 특히 성리학 탐구만으로 두문불출 하였고 항상 분수에 맞게 자연의 섭리에 따랐다. 황고에서 함양군수로 계실 때에 모시고 다니면서 안음지방의 산수절경을 관람하였기에 만년에 드디어 원학동 고산하에 정착하여 살았다. 선생의 극진한 효행을 영남의 사림들이 천거하여 서기1536년3월에 증 이조정랑하였고, 서기1548년1월19일에 향년61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정충사에서 제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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