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청 폭포의 본래 이름은 가섭동폭 또는 고답 폭이라 하였다 한다. 옛날 금원산에 자리한 가섭사에서 비롯된 것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유생들이 지방 향시를 목표로 공부하였던 공부방 격인 유안청이 자리해 유안청 계곡으로 부르게 되었다. 유안이란 청금록과 같은 말로 유생(儒生:선비)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푸른 도포를 입은 사람이 청금이며 주자의 백록동규에서 이 말을 쓴 후로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사림 사족 유림이란 뜻으로 유안청 청금 안들로 사용했는데 본래는 시경에서 따온 말이다. 유안청 계곡의 경관보다도 다른 고장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선비들의 유안청이 있었다는 것을 명소 이상의 자긍심을 안고 있는 계곡이다. 폭포는 삼층으로 가장 위에 위치한 제1폭은 직폭으로 높이가 30m이고

(그림 : 제1폭)
제2폭은 내리반석인 와폭이며 길이가 60m이고 제3폭 역시 층층으로 이루어진 직폭과 와폭으로 그 길이가60m이다.

(그림 : 제2폭)
제 3폭은 유안청 계곡 어구에 있으며 이 폭포 안에 용폭과 “고답폭 구시쏘”라는 조담이 있다. 화림지 형승 편에 의하면 하기 양지 위쪽으로부터 유안 청에 이르기 까지 백반암석이 5리에 연하였고 삼층 폭포를 이룬 절경이라 기록하였다.
금원산 자연휴양지 개장 이후 경상남도에서 유안청 폭포 일대에도 안내표지 산책로 등을 위시한 편의시설을 많이 하였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도 급격히 많아지고 있다.

(그림 : 제3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