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북하면의 서쪽 끝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서마리"라 하다가 이조 초기에 사마시(진사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많이 배출되었다 하여 “사마”라 한다. 사마 입구지역을 “묵은 장터”라고도 하였으며 유명한 의원 유이태 선생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위천중학교 위천보건지소 위산교회 등이 있다.
▸불고대(不孤台) : 확계 정옥견(鄭玉堅)이 살던 곳이고 박약재 강위룡(姜渭龍)이 노닐던 곳으로 북쪽에 덕유산이 있고 덕불고(德不孤)라는 뜻에서 이름 지었다.

▸정제안(鄭濟安) :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나서 태종 5년(1405) 16살에 생원시에 합격 세조3년(1457)에 졸하였다.
▸모학재(慕學齋) : 창신교위 정한(鄭瀚)을 기려서 영조 12년(1736)에 세웠다.

▸정종아(鄭從雅) : 세종 7년 ~ 성종 19년(1425~1489) 단종 1년(1453) 무과급재, 충주목사를 지냈다.
▸정회아(鄭懷雅) : 세종10년 ~ 세조10년(1428~1464) 문과급제, 광주 판관을 지냈다.
▸사마재(司馬齋) : 안의향교에 있었던 것을 정태균·임기우 등이 주종하여 1913년 이곳으로 옮겨 세우고 옛 안의현의 사마안을 보관한다.

▸안분정(安分亭) : 마을 서쪽 500m에 있다. 통사랑을 지낸 해주인 오사량(吳士良)이 중종 8년(1513)에 쌓고 시를 읊조리던 곳이다.
▸학담(鶴潭) : 마을 앞에 있는 깊은 소다. 소 곁의 벼랑에 학이 살았다하여 이름되었다.
▸침대롱바위(針岩) : 마을 동남쪽 100m에 있다. 숙종 때의 명의 유이태(劉以泰)가 나라에서 내린 침을 받았던 자리라고 한다.

▸정이아(鄭以雅) : 세종12년(1430)에 나서 단종1년(1453)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를 지냈고 세조6년(1460) 서거정(徐居正)을 따라 서장관으로 명에 갔다 오는 길에 병사하니 서공이 반장하여 역동에 장사했다.
▸정옥견(鄭玉堅) : 호는 확계 세종32년(1450)에 나서 사포서 별제를 지내고, 금계서원에 이원달, 유환과 함께 모셨다.
▸정옥형(鄭玉衡) : 사마시와 문과에 급제하여 창원부사를 지내고 사헌부 집의가 추증되었으며 금계서원에 모셨다.
▸오덕홍(吳德泓) : 명종16년~인조19년(1561~1641), 성팽년에게서 배워 진사가 되고 희릉참봉을 지냈다.
▸오전(吳佺) : 호는 송주, 첫 이름은 숙(俶)이고 선조 17년(1584)에 나서 광해5년(1613) 진사과 계축방에 등제, 인조 23년(1645)에 졸하였음
▸유이태(劉以泰) : 숙종조의 유명한 의원으로 숙종36년(1710) 국왕의 병환에 전국의 명의를 불러 들였는데 유의원도 불려서 전주까지 갔던 일이 왕조실록에 적혀있다.
▸송정숲 : 척수담을 가로 막아 사마보를 만들었고 보 밑 하천부지에 3,000㎡ 남짓한 송정 숲이 하나의 섬을 이루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