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창 수승대 명승지(2008. 12. 26일 지정 국가명승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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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지정명칭 : 거창 수승대(居昌 搜勝臺)
ㅇ 지정종별 및 번호 : 명승 제53호
ㅇ 소 재 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번지
ㅇ 지정사유
- 수승대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영남 제일의 동천으로 쳤던 ‘안의삼동(安義三洞)’ 중 하나인 원학동 계곡 한가운데 위치하는 화강암 암반으로 깊고 긴 계곡과 주변 임야와 어우러져 탁월한 자연경관을 보여줌.
- ‘수승대’ 명칭과 관련하여 퇴계 이황의 개명 시와 갈천 임훈의 화답시가 전하고, 수승대 양쪽에 위치하는 요수정과 관수루 등이 잘 남아 있어 요산요수하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산수유람 문화가 결합된 장소적 상징성이 큰 명승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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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전명수송대(羅濟傳名愁送臺) - 신라백제에서 전한 이름 수송대요,
요수개명암구대(樂水改名巖龜臺) - 요수선생이 개명 이름은 암구대라.
퇴계석명수승대(退溪錫名搜勝臺) - 퇴계가 내린 이름은 수승대요,
유풍송명요수대(遺風誦名樂水臺) - 유풍으로 읊는 이름은 요수대라.

수승대는 국립공원 덕유산이 빚어 놓은 이 고장 제일의 유서 깊은 명소이다. 북상면의 여러 골짜기에 흘러내린 맑은 물이 위천으로 모여 황산 앞에서 구연폭을 이루고 구연소를 만들면서 창조한 커다란 천연바위 거북대가 수승대로 그 높이는 약10m이고 넓이는 50㎡에 이르며 그 생김새가 마치 거북과 같다하여 구암대 또는 암구대라고도 한다. 또한 옛날부터 수많은 현인들과 한인묵객이 찾았던 대라 한다.

바위틈에는 천년 세월에 비바람을 맞으며 모질게 살다간 노송의 잔해들이 뒤따라 커나는 나이든 소나무속에 띄엄띄엄 섞여있고 사면 전신에는 온통 사람들의 이름과 글귀들의 글자로 한 치의 틈이 없으며 평탄한 대위에는 단이 축조되어 있다. 서편에 있는 구연 쪽 대 밑에는 수십 명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암굴이 있고 바닥에 술을 저장하는 장주갑이 있다. 그 밑이 바로 구연소이다.

옛날 삼국시대 이곳이 백제의 영역으로 있을 때 신라국을 드나들던 사신들을 송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근심 수 보낼 송자를 써서 수송대라 하였으며 지금의 이름 수승대는 1543년 초 정월에 퇴계 이황 선생이 영승마을에 머물다 떠나면서 그 내력을 듣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여 “수승”으로 고친다는 기제 수승대에서 비롯되었다. 안음 고현에 계곡이 있는데 속명이 수송대이다. 천석이 너무나 좋아 구경코자 하나 여가가 없어 못가는 것이 한이 된다. 그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여 수승으로 바꾸자 하니 모두 좋다고 하였다.
퇴계 별집에 있는 수승대 명명시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수승대 명명시(命名詩)
搜勝名新換 逢春景益佳(수승명신환 봉춘경익가)
遠林花欲動 陰壑雪猶埋(원림화욕동 음학설유매)
未寓搜尋眼 惟增想像懷(미우수심안 유증상상회)
他年一樽酒 巨筆寫丹崖(타년일준주 거필사단애)
수승대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봄맞이 경치 더더욱 아름다워
멀리 숲에서 꽃들이 망울지는데 그늘진 골짜기 흰 눈 쌓여있네
두 눈으로 찾아가 볼 수 없으니 머릿속으로만 그려볼 뿐이라네
다음 해에 술 한 병 차고 와서 큰 붓으로 붉은 절벽 그려야지
또한 안의읍지 제영편에는 요수 신권(愼權)의 시도 있다.
요수(樂水) 신권(慎權)의 퇴계(退溪) 사모시(思慕詩)
巖龜臺待退溪不來(암구대대퇴계불래)
암구대에서 퇴계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네
爲掃臺邊路 庶望華駕臨(위소대변로 서망화가림)
詩來人不至 無意獨登臨(시래인불지 무의독등림)
대 옆 길 쓰는 건 아름다운 가마오길 바람인데
시는 왔으나 사람은 오지 않아 무심히 혼자 멀리 바라보네
搜勝臺奉和退溪韻(수승대봉화퇴계운) 수승대 퇴계선생 운에 화답하여
林壑皆增采 臺名肇錫佳(임학개증채 대명조석가)
勝日樽前値 愁雲筆底埋(승일준전치 수운필저매)
深荷珍重敎 殊絶悵望懷(심하진중교 수절창망회)
行塵遙莫追 獨倚老松崖(행진요막추 독의노송애)
골짝에는 채색이 더해 가는데 대 이름 비로소 밝히니 아름답구나
좋은 날에 술동이 앞에 차리고 구름 같은 수심 붓 끝에 묻으려네
깊은 마음 귀한 가르침 보배로우니 그리운 회포를 끊으려 하네
속세에 노닐며 쫓지 못하고 홀로 우거진 솔 벼랑에 기대어 보네
갈천(葛川) 임훈(林薰)의 해수송시(解愁送詩)
花滿江皐酒滿樽 遊人聯袂謾紛紛(화만강고주만준 유인연몌만분분)
春將慕處君將去 不獨愁春愁送君(춘장모처군장거 불독수춘수송군)
강 언덕에 꽃이 만발 두루미엔 술이 가득 상춘객은 어울려서 흥겹게 놀고 있네
봄은 저물어 가고 그대 떠나려 하니 봄만 아쉬운 게 아니라 그대 보냄이 근심이네
동계(桐溪) 정온(鄭蘊)의 시
慣踏曾充好 遙思始覺佳(관답증충호 요사시각가)
水從龍宅壯 嵐接虎陰埋(수종용택장 람접호음매)
버릇처럼 거닐 땐 좋은 줄 몰랐는데 멀리서 생각하니 아음다움 비로소 알겠네.
물은 용 사는 곳에서 씩씩히 내려오고 남기는 호음(산 지명)에 이어져 숨었네

화림지에 의하면 병마사 성윤동이 많은 돌을 주어다가 대에 오르는 계단 층대를 만들었다 하였고 대바위 암면 현각문에 의하면 척암 성공 축단 대상이라 하였으며 척암 성윤동이 대위에 단을 축조 하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나긴 세월과 함께 계단 층대는 없어지고 대상 축단은 근대까지 자연석 축대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1950년대에 와서 모두 헐어버리고 활석으로 개축하였다.

수승대 북쪽 암면에는 퇴계선생과 갈천선생의 시와 함께 ‘갈천장구지대’ ‘퇴계명명지대’라고 1810년에 한부연이 새겼다. 전후좌우로 여러 옛 인물들의 이름좌와 시운들이 새겨져 있고 우측 적별 윗면에 ‘척암성공축단대상 방천대하’라 새겨진 글자가 푸른 이끼에 묻혀 있으며 서편 정면에 새겨진 요수 장수지대가 뚜렷하다. 대의 후미 등 쪽에는 ‘요수 신선생 후손 축단대상 방천대하’라 현각되어 있다.

수승대는 멀리 덕유의 흰 구름을 이고 탈속의 경지에 자리한다. 바람소리 산새소리 물소리들이 한데 어울려 대자연의 교향곡을 연주한다.

수승대 둘레에는 섬솔 구연폭 구연쏘 밤쏘 약어담 자고암 욕기암 복구암등 많은 형승이 있고 구연서원 관수루 요수정 등 모든 것이 요수신선생 장수지지 안에 있으며 자연과 어울려 경치가 한층 더 빼어났다. 지난 1986년8월에 이 일대를 국민관광지로 지정하였다가 2008. 12. 26일자로 국가명승 제53호로 지정되었다. 수승대의 맑은 바람은 이 고장 팔경의 제일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