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천면 남산리 395번지인 여시골 마을의 한가운데 있다. 숭정대부 지중추부사 권락철을 기리어 후손 대현이 1976년에 세웠다.
권락철은 서기1751년에 태어나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난 사람으로 기골이 장대하였고 지조가 굳었으며 천성이 묵중하였다. 만년에 수직으로 지중추부사 하였다.


역문
추모재기
옛날 우리선조 삼괴당 선생께서 일찍이 안음 사마리에 오시어 터전을 마련하고 살다가 세상을 떠나자 그 마을 북쪽에 있는 계양동에 안장했으며 사림들이 높이 받들어 조두를 모시고 있는 곳 역시 그 아래로 계양동으로부터 두어 마장 되는 바이다.
금곡리는 내가 성소하기 위하여 자주 찾던 곳이었기에 그 동부가 아늑하고 깊었음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종제 대현군이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우리 집안이 노천선조 이후로 여러 대가 계양동 선영하에 계시고 숭정공의 묘소가 북상면 염정동에 계시는데 자손이 미약하고 빈한하여 의절을 갖추지 못했던바 이제 작은 정성을 드려 한 채의 재실을 금곡리 마을 안에 지었으니 이는 정경부인 이씨 이하 여러 위의 묘소가 이 근처에 소재하고 있으므로 수호하는데 편리하게 함이요, 성심껏 다듬고 가꾸니 세일사를 뫼실만 함으로 현판을 걸고 추모재라 한 것이오이다. 그러나 숭정공 묘소 아래에 건립하지 못한 것이 심히 송구스럽고 아쉬운 마음 금할 수 없으니 원하옵건대 형장께서 이 사연을 기문에 밝혀주오 라고 하였다.
내가 조용히 생각해보면 숭정공께서는 삼괴당 노천 두 부군의 유훈을 따라 태평성대에 탄생하셔서 대수를 누렸음에 제일 품계의 직함을 받은 적도 있고 학문과 행의가 남달라 만인의 추앙을 받은 것이리라. 지금 세태를 돌아보면 물질 탐욕에 인륜강상을 저버리는 자 그 얼마일까 생존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굶주리고 추위에 떨어도 봉양할 줄 모르는데 하물며 조상의 분묘에 이렇듯 한 성의는 과히 알만하도다. 이제 자네가 이미 공시도 아니고 가세도 넉넉지 못한데 단독으로 이와 같은 큰일을 해냈으니 이 어찌 가상타 아니하리오. 대체로 자손의 정신이 곧 조상의 정신이다. 선대의 정령이 양양하게 이 재실에 오르고 내리실 것이다. 그러고 기뻐할 것이다. 모쪼록 한때 짓고 가꾸는데 만족하지 말고 명절날에는 반듯이 자손들을 인솔하여 선영의 묘역도 사리고 재실도 청소하면서 오늘의 뜻을 게을리 말지어다. 효성의 도리를 다하여 선대의 덕행을 기려서 무궁한 세대에 기대를 바라나니 자네는 더욱 힘쓰고 노력할지어다. 병진 6월 하순에 안동 권옥현은 이 기문을 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