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증 통훈대부 사헌부감찰 신동건 지려 효성의 극치로 물고기에 효자를 새긴 신동건의 정려이다. 위천면 황산리 768번지 수승대 국민관광지 경내 청송당과 나란히 서있다. 정려는 원래 돌문 앞에 있었는데 1987년 가을에 이곳으로 옮겼으며 효자의 손자 되는 신병채가 1903년에 건립하였던 것이다. 전면에 (효자증 통훈대부 사헌부감찰 신동건 지려 상지 이십 구년 임진 사월일 명정)이라 음각하고 이면에 기문이 세자로 음각되어 있다.
역문 효자 증 통훈대부사헌부감찰 신동건 지려 고종 29년 임진년(1892) 4월 일 정려를 명함 성인께서 사람 된 도리를 극진히 사신 것은 규구가 둥글고 모난 것을 만드는데 그 역할을 다하는 것과 같으나 돌아보아도 그 뛰어나고 보기 드문 일로 신기한 응답이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어찌 그 행실이 왕상 같은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하겠는가? 대개 그 기품이 이치에 순수하고 의리가 천명에 편안한 것은 중용의 도가 되는 까닭이다. 근세의 방영고씨를 일찍이 순유라고 하였으니 그 논지가 대략 이와 같았다. 나는 일찍이 말하는 것은 듣고 그 사람의 인품을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대과 소과의 상은 주역에 나타나 있고 상세는 정성이 지극하면 신을 감동시킨다고 했으니 요컨대 사람의 자식과 신하가 되어서 그 맡은 일에 몸을 다하여 마땅히 그 도리를 다하지 않을 바가 없어야 하나 애통하고 박절한 날을 당하여 어느 틈에 옛 성인께 이런 일을 처리할 방법을 물을 것인가? 그러나 정성이 유달리 지극하면 앞이 캄캄하고 판단하기 어려운 가운데서도 반드시 그것을 아깝게 여겨 더러 밀어주고 끌어주듯이 하여 호응이 이미 그 소원하는 바를 맞이하여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하늘과 사람이 서로 멀지 않음을 더욱 믿게끔 하였으니 그 또한 거룩한 일이다. 안의 효자 신묵제공은 효도로 사헌부 감찰직에 추증되고 그 정려를 받았다. 그 손자 병채가 그 행장을 갖고 와서 기문을 지어 정려 아래에 걸어 두려고 하기에 내가 그것을 살펴보니 바야흐로 효자의 효행이 대체로 구비되어 있었다. 생각건대 손가락을 벤 것은 옛 성인도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어버이를 섬기고 병간호를 함에 있어 효자로 알려진 사람들은 자기의 몸을 아까와 하지 않고 꺼져가는 목숨을 구하는 일이 많이 있으니 비록 그 효험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나 이러한 일들은 결단코 어질지 못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이 억지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또한 이름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거짓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그 천성을 타고 나기는 한가지이다. 하물며 효자처럼 하늘의 도움을 얻은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랴? 무릇 왕상의 고기는 어머니가 먹고 싶었기 때문이고 또한 겨울이 비록 제철이 아니나 고기가 얼음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오히려 있을 수 있거니와 효자 신공이 고기를 구한 것은 빈소에 전을 올리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왕상의 어머니가 살아 계신 때의 일과는 차이가 있고 아주 부득이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고기 등지느러미에 글자가 생기는 신기한 응답은 더욱 이상하다. 부득이한 때도 아닌데 신기한 응답이 이르렀으니 그 또한 하늘이 백성을 인도함이 군자가 세상을 구함이 급한 것과 같으니 예전에 보기와는 또 더함이 있구나. 아마도 이치가 고금에 있어 희미하고 뚜렷하거나 적고 넘치거나 하여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닐 진데 가히 서로 견주어 비교하지는 못할 일이다. 이 또한 방영고씨도 언급하지 않은 것을 나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판단하기엔 부족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일찍이 안의 고을에 갔다가 그 고을 사람들이 효자 못에 얽힌 이야기를 입에 담는 것은 익히 들었는데 이제 행장들을 살펴보니 정말 그러하여 잠시 그 대강을 써서 후세의 돈후한 기록에 알린다. (광무계묘7년1903)9월하한 완산 이건창 삼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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