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천면 모동리 352번지 무월(舞月)마을 서쪽에 있다. 서기 1841년에 약암 신재서(愼在筮)를 기리어 지방유생들과 그의 후손들이 세운 육모정이다.
약암정기 역문 안음현 북쪽 오십리 허에 있는 무월리에 약암이 있어 그 형상이 높고 둥글게 생긴 거북이 엎드려 마치 숭고한 선비가 홀로 우뚝 선 기상이다. 나의 조고 부군께서 그의 뜻이 높으셔서 일찍이 벼슬을 원하지 아니하셨고 임천을 좋아하여서 황산에서 이곳으로 이거 하셨다. 그 후 그곳에 집을 지으시고 자호를 “약암”이라 하셨으니 산세가 아름답고 맑은 샘물이 솟아 약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침이면 맑은 샘물을 즐거이 마셨고 낮에는 들에 나가 농사지었으며 날이 저물면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읽으셨으니 집안에서는 효도의 사표요 밖에서는 사회의 사표로 존경을 받았다. 특히 학문을 좋아하셔서 양은 생하고 음은 소멸하는 이치와 가면 아니 되고 와야 한다는 수치를 스스로 마음에 익혀 깨달아 고상함을 맺고 그 뜻을 오래도록 함은 옛날 소선생께서 항상 조용한 가운데 만물을 살피시고 심지어 의복에까지 정신을 기우려 단속하심과 다름이 없었다. 부군께서는 여가가 있는 날에는 새미가의 반석에 노니셨고 항상 첫새벽이면 나막신을 신으시고 이 샘에서 세수하신 다음 세모금의 물을 마셨으니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한결 같았다. 티끌하나 없는 맑은 취향은 어진 선비의 표본으로 많은 후생들이 약암 선생이라 추앙하였다. 아- 슬프구나. 이제 부군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어언 육십여 년이로다. 평소 부군께서 노니시던 그곳에는 잡초만 무성할 뿐 높은 산과 흐르는 물만이 보일뿐이다. 지나는 나그네들 무상함을 금치 못하며 눈물짓는데 하물며 그 자손들이야…… 종관(愼宗寬)이 일어나 슬픔을 되새기며 정자를 이루려하니 원근에서 일어나 기꺼이 도우려하였다. 약암당 근처에 세우려 하였으나 그곳은 너무 협소할 뿐 아니라 구석진 자리라 남쪽으로 두어 두둑 넘어 세 갈래 시내위에 준공하여 부군의 호에 따라 “약암정”이라 현판을 걸었다. 이에 산천이 빛나고 경관의 채색이 생동하여 당시의 모습이 완연하니 부군께서 남긴 풍유가 어찌 만인의 감모에 사무침이 없으리오. 부군을 위하는 도에 정자는 자그마하나 그의 덕 폄은 결코 적지 아니할 것이며 더욱 커질 것이다. 후예 후진들이여! 이 정자 보전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또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글 읽고 의리 넓혀 부군의 높으신 뜻을 계승함일 것이다. 투철한 지조로서 모진 비바람도 태산의 자태 되어 한 치의 동요 없이 묵묵히 부군의 유지를 받든다면 지하에 계시는 부군께서도 자랑스러운 후예 있음을 만족하며 기뻐하실 것으로 믿으면서 감히 약암정기로 남기고자 한다. 때는 병자년 겨울에 불초손 종관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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