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진사를 지낸 박약재 강위용을 기리기 위하여 처음에 그가 강학하던 사마리에 세웠던 것을 후에 이곳 당산리 401번지로 이건하였다.
역문 중건 박약재 기 안음은 산수가 아름다워 그 정기로 현호한 사람들이 많이 태어남에 혹은 나라에 벼슬하고 혹은 임천에서 강마도의하여 입신하더라. 성균진사 박약재 강공 또한 임천의 호걸로 영특한 성품에 일찍이 중부 개암공에게 배워 20여세에 생진하니 그 이름이 높이 들낫느니라. 이에 공은 벼슬보다 학문 연구에 몰두하여 중용 대학 근사록 등의 경서를 탐독하였고 임갈천 형제와 정역양 부자 성석곡 등과 자리를 같이하여 사도의 길을 걷더니 불행히도 나이 겨우 40여세에 성업을 못다한 채 세상을 떠나셨다. 상난 후 그의 유문을 간수치 못하여 아쉬운 마음 금할 수 없으나 박약재란 재명만 보아도 그의 학문의 깊이를 알 수 있으니 글을 넓히고 예를 숭상함이 성현의 말씀이라 박이 아니면 약을 이룰 수 없고 약이 아니면 박의 의가 없어지니 박과 약은 수레의 양 바퀴와 같으니라. 공 또한 학문의 도가 박약이 아니었던들 어찌 성현의 문정에 이르렀으랴? 옛적 증점이 옻칠로서 경서를 전함에 정자가 기려 큰 뜻을 이루었으니 공의 명재 역시 기린이 없이 오래도록 전해지리오. 공이 세상을 떠난 뒤 사림들이 조두의 예를 갖추었음은 유운의 장구함이라. 공이 일찍이 사마리에 집을 짓고 거처하시며 학문을 강하였으나 세월이 오래 되어 터만 남으니 후손들이 당산에 다시 세워 수호 하였느니라. 하나 상금 기문이 없어 아쉬워하며 후손 신환이 나에게 글을 청하거늘 내가 일찍이 공의 유허비문을 기술한바 있어 망설이다가 그의 청함이 간절하기에 다시 생각건대 인륜 도덕이 쇠퇴해 지고 성학이 어두워지는 이때 그의 정성이 가상하고 공의 학문지도를 글로 남겨 후세의 사법이 되게 일러둔다. 무신년 초추에 화산 권용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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