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천면 황산리 257번지 정안동에 있다. 판서 조중인을 기리며 그의 세손의 제향지소로 서기1780년에 건립하여 세향하다가 서기1965년에 충익공 조문택이하 삼대의 제단이 이곳 정안동에 모셔짐에 따라 충익공 세손의 제향지소가 되었다. 본건물이 낡아 1989년에 헐고 다시 지으면서 내효당과 양사를 아울러 신축하였으며 1929년에 건립한 숭익문도 이때 고쳐 세웠다.


역문
정안재기
영남과 호남 간에 높이 솟은 덕유의 영봉아래 산자수명한 마을이 있으니 이곳이 안음의 황산이오. 우리 선조 판서부군 휘 중인께서 무오사화를 피하여 자리 잡은 세전지지니라. 황산 마을 뒤편은 산 높고 물 맑은 별천지요 물외도원이니 바로 정안동이다. 동의 복판이며 부군 안장지전에 옛 집을 헐고 새 나무를 깎아 세운 것이 오늘날의 정안재이니 때는 정조 경자년으로 거금 이백 육십년 전이로다. 본시의 흔적과 기록이 없어 아쉬운 마음 금할 수 없으나 재는 위선 발본지소요 조선 제향지소임은 재언이 불요하고 부군은 단묘 선위지제에 거창 땅으로 은거하신 동국 교목 세신이요. 좌리공신대총재 충익공 휘 문택의 증손이며 사마양시에 급제하여 옥당관을 역임하시고 수개 군을 다스리다가 만년에 임천에 묻혀 후진 양성에 신명을 다하신 도덕군자 죽헌선생 휘 숙의 증조부가 되시니라. 광복 후 을사년에 실전한 충익공 이하 삼대 제단을 부군지묘 바른편에 모시고 해마다 영호제족이 잔을 드리니 이로부터 재는 충익공의 재실이 되었도다. 세손이 융성하여 그 수호가 천 육백이라. 오종의 광영이 아닐 수 없으며 모두가 화목하고 조선지성이 극진하니 이 어찌 선영의 은덕이 아니리요, 수호 보전에 정성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을 간절히 기원하나니라. 슬프다 오백년 역사를 간직한 재에 아직 기문이 없으니 병인 오월 상한에 불초후손 병희는 눈물을 머금고 삼가 찬하노라.